[그런거 野]그 많던 초고교급 투수들, 다 어디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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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원 계약금 받고 프로 왔지만 류현진-임태훈 이후 활약상 미미
요즘은 신인상도 중고 신인 차지… 대형 신인투수 언제 볼수 있을까

▷몇 년 전 본사가 주최한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한 선수를 인터뷰했다. ‘초고교급 투수’라는 당시 평가에 걸맞게 그는 압도적인 피칭으로 팀을 정상에 올려놨다. 얼마 뒤 있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낙점받을 게 확실했던 상황. 그 얘기를 꺼내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솔직히 거기(전년도 최하위 팀)에서 뛰기 싫어요.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은데 주위에서 말리니 어쩔 수 없이 남은 거죠.”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이 담긴 말투였다. “언젠가 메이저리그 갈 수 있을 테니 열심히 해 봐요”라며 의례적인 대답을 했지만 어린 선수가 국내 프로야구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몇 년 뒤 또 다른 ‘초고교급 투수’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현실은 그들의 생각과 너무 달랐다. 두 선수 모두 아직까지 ‘미완의 대기’로 불릴 뿐 에이스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의 실력과 몸 상태로 미국에 갔다면 메이저리그는커녕 마이너리그에서도 방출되지 않았을까. 그나마 말이 통하는 국내에서 체계적인 관리를 받으며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투수라면 누구나 ‘제2의 류현진’을 꿈꾸겠지만 아무나 그리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2006년 한화에서 데뷔한 류현진(LA 다저스)은 그해 다승(18승), 평균자책점(2.23), 탈삼진(204개) 타이틀을 휩쓸며 사상 처음으로 신인왕과 정규리그 최우수선수를 동시에 석권했다. 류현진은 그해 1차 지명에서 연고 팀 SK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2차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롯데도 류현진을 외면했다. 2차 2순위로 입단한 류현진의 계약금은 2억5000만 원. 같은 해 KIA의 1차 지명을 받은 한기주의 계약금은 10억 원으로 류현진의 4배였다. 2007년에는 두산의 1차 지명 신인 임태훈이 7승 3패 20홀드에 평균자책점 2.40을 기록하며 신인상을 받았다. ‘괴물’ 류현진의 활약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빼어난 성적이었다.

▷2007년을 마지막으로 ‘1년 차 신인왕’은 사라지고 신인왕은 ‘중고 신인’들의 전유물이 됐다. 수억 원의 계약금을 받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신인들은 매년 나오지만 데뷔 이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는 선수가 많다. 역대 계약금 2위인 7억 원을 받고 한화에 입단한 유창식은 데뷔 해인 2011년 1승 3패에 그쳤다. 2012년 NC에 우선 지명된 노성호와 이민호는 1군 첫해인 2013년 각각 2승 8패, 1승 3패 10세이브에 머물렀다. 2013년 신인 중 최고 계약금(6억 원)을 받은 NC 윤형배는 부상과 수술 탓에 아직 한 번도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2014년 신인 최고 계약금을 받은 kt 유희운은 2군에서조차 2승 5패(평균자책점 10.02)로 부진하다.

▷올해는 신인 중 계약금 3위(2억5000만 원)인 LG 임지섭이 3월 30일 두산과의 데뷔전에서 승리하며 잔뜩 기대를 모았지만 이후 2패만 더한 채 5월 이후 2군에 내려가 있다. 감독들은 “신인 지명은 맞을지 안 맞을지 모르는 로또”라고 얘기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수준 차이가 갈수록 커져 신인이 곧바로 두각을 나타내기 어렵다”고도 입을 모은다. 국내 프로야구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방증으로 볼 수도 있지만 류현진과 임태훈이 신인상을 받은 2006년과 2007년의 프로야구 수준이 지금보다 크게 낮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약 때 프로다운 것도 좋지만 마운드에서도 프로다운 대형 신인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전국고교야구대회#신인#초고교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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