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채의 사커에세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한국축구의 ‘축복이자 저주’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7월 29일 06시 40분


박지성. 스포츠동아DB
박지성. 스포츠동아DB
■ 2002년 월드컵 이후 다시 돌이켜본 12년

당시에는 무작정 좋았던 4강 신화
이후 12년간 감당 힘든 무거운 짐
실력 냉정히 파악 후 새 출발해야

지난 25일 열린 K리그 올스타전에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5만여 관중이 입장해 뜨거운 열기를 뿜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한국축구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던 박지성이 주인공이었는데요, 당시 대표팀의 막내였던 박지성이 이제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함으로써 한 시대가 저물었습니다.

이른바 ‘4강 신화’가 지난 12년 동안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돌아봅니다. 제 생각에 2002년은 한국 축구에게 축복이자 저주였던 한 해였습니다. 월드컵에서 첫 승을 거두고 유럽의 강호들을 차례로 물리치며 16강을 넘어 준결승에 오른 건 분명 엄청난 업적이었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이 그 정도 성적을 낼 거라고 예상했던 극소수의 사람들조차 그 이후에 얼마나 큰 어려움이 뒤따를지는 내다보지 못했을 겁니다. 당시 우리 대표팀이 그럴 만한 실력이나 자격이 있었는지의 여부를 떠나서, 그 후로 감당해야만 했던 짐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는 4년 후에야 알게 됐죠.

2006독일월드컵 첫 경기에서 토고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둔 한국은 프랑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고도 무승부를 거두면서 16강 진출에 유리한 고지에 올랐습니다. 주장 이운재 선수가 “3전 전승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해서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대표팀 캠프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지만, 한국은 스위스에 완패를 당하며 1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당시 스위스의 두 번째 골을 놓고 오프사이드 논란 끝에 소신 발언을 했던 해설위원 한 분은 결국 중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했다더군요. 한편, 결승전이 끝나고 스페인을 여행 중이던 저는 취리히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국제축구연맹 웹사이트에 접속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지 확인해 달라는 부탁이었죠. 집에 전화해보니 스위스전 패배의 후폭풍이 온라인까지 퍼져나갔더라고요. 트래픽이 갑자기 폭주하는 바람에 서버가 다운됐다고 합니다. 평소에도 그만큼 관심을 가져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0남아공월드컵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원정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함으로써, 8년 전 홈에서 이뤄냈던 기적 같은 성과가 운이 아니었음을 마침내 입증할 수 있었죠. 아르헨티나 같은 강팀에게 치명타를 얻어맞고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얻은 결과였기에 더욱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항상 상대 팀들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곤 했습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초강대국, 해볼 만한 비슷한 전력, 그리고 16강 진출을 위한 제물, 이렇게 말이죠.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아마도 벨기에, 러시아, 알제리가 각각 그런 팀들로 예상됐지만 결국 우리가 알제리의 제물이 되고 말았네요.

이제 12년이 흘렀으니 화려했던 과거는 추억으로 남겨놓고 새 출발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4강 신화’의 단꿈에 젖어 있다가는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냉정하게 파악한 다음, 우리가 가진 것을 바탕으로 상대를 공략해야겠죠. 제 꿈은 우리나라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겁니다. 언젠가는 저도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이렇게 당당히 얘기할 날이 오겠죠. “얘들아, 할아버지가 그 때 거기에 있었단다.”

● 정훈채는?= FIFA.COM 에디터. 2002한일월드컵에서 서울월드컵경기장 관중 안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면서 축구와 깊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UEFA.COM 에디터를 거치며 축구를 종교처럼 생각하고 있다. 2014브라질월드컵에는 월드컵 주관방송사인 HBS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국제축구의 핵심조직 에디터로 활동하며 세계축구의 흐름을 꿰고 있다.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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