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프리즘] 시련이 ‘강한 선수’를 만든다…오늘도 욕 먹은 당신, 욕봤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3년 7월 30일 07시 00분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과 같은 의미다.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야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아무리 슈퍼스타라고 해도 마냥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팬심’은 선수를 기다려주지 않는 풍토로 변모했다.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은 부진에 대한 마음고생도 모자라 팬들의 비난까지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2011년 일본 오사카에서 ‘코리안특급’ 박찬호와 인터뷰를 했다. 당시 박찬호는 메이저리그를 떠나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해 오릭스 선수 신분이었다. 기자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인터뷰 중 하나다. 2시간 반 가량 인터뷰를 통해 ‘박찬호, 한국에서 뛰고 싶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지만, 기자의 마음에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은 바로 시련에 대한 이야기였다.

박찬호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다. LA 다저스에서 매 경기 호투를 펼치며 ‘국민영웅’이 됐다가, 텍사스 이적 후에는 부상과 부진에 허덕이자 온갖 비난과 질타에 시달려야 했다. 국내 언론은 ‘먹튀’라는 수식어를 붙였고 팬심도 떠났다. 너무 아픈 시기였지만 그는 시련을 극복하면서 자신이 한층 강해졌다고 말했다. 일본, 한국 진출에 대한 우려의 시선에도 그가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었던 것도 시련을 이겨내면서 얻은 평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한국 진출에 대해) 주변에서 ‘지금껏 쌓아온 것들을 잃지 않겠느냐’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시련이 두렵지 않았다. 시련을 겪고 나면 그만큼 깊이가 생기고 자신의 목표에 대해 절실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적으로도 더 강해지고 당당해질 수 있다.” 인터뷰 당시 박찬호의 말이다.

그 무렵 박찬호는 선발등판을 앞두고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재활군에 내려간 상태였다. 조급함을 느낄 법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이마저도 기회로 여겼다. 박찬호는 “부상으로 경기를 나가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이번 부상을 통해 일본의 재활프로그램을 겪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일본의 좋은 재활인프라와 트레이너들의 능력이 어떤지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훗날 나에게는 공부가 될 것이다. 항상 좋은 쪽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한국 마운드에서 팬들과 추억을 만들고 싶다”던 자신의 말대로 이듬해 박찬호는 한화에서 뛴 뒤 은퇴를 선언했다.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낸 박찬호의 의지가 있었기에 팬들은 좋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시련은 당시에는 아프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나은 선수이자 인간으로 성장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취재가 끝난 뒤 야구장을 나서면 선수들을 기다리는 팬들을 볼 수 있다. 한창 잘 나가는 선수에게는 다수의 팬이 몰리는 반면, 부진한 선수는 조용히 그 틈을 빠져나가기 바쁘다. 심지어 팬들의 욕을 들으며 퇴근길에 오르는 선수도 있다. 어려울 때 격려의 한마디가 더 힘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시련을 통해 더 ‘강한 남자’가 되어 돌아올 이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려주는 것은 어떨까.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트위터 @stopwook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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