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 사커에세이] 승부조작 그때 그 악몽 정 회장님, 잊으셨나요?

  • 스포츠동아
  • 입력 2013년 7월 23일 07시 00분


2년 전 여름 한국축구는 열병을 앓았다. 열은 생사의 갈림길까지 치솟았다. 속수무책이었다. 병인(病因)은 프로축구선수들의 ‘승부조작’이었다. 검찰의 칼날은 매서웠다. 그라운드에 서야할 선수들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조직폭력배와 연계된 브로커의 존재도 확인됐다. 소문은 걷잡을 수 없었다. 급기야 자살하는 선수도 나왔다. 축구팬들은 등을 돌렸다. 더 이상 거짓 승부를 보지 않겠다고 했다. K리그의 근간이 흔들렸다. 사상 초유의 리그 중단이 결정될 뻔했다. 국회가 나섰다. 승부조작 근절대책을 촉구했다. 정부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승부조작은 물론 불법도박사이트에 대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무더기 구속과 징계로 악몽 같은 2011년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승부조작에 대한 내 기억의 편린들은 아직도 선연하다. 당시 정몽규 프로축구연맹 총재(현 대한축구협회장)는 “살을 깎는 아픔이 있어도 모든 암적인 존재는 도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최근 프로연맹은 그 때의 마음가짐을 잊어버린 듯 하다. 연맹은 11일 이사회를 열고 승부조작가담으로 영구제명과 2∼5년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선수 중 보호관찰과 봉사활동(300∼500시간) 이행의 징계를 받은 선수 가운데 봉사활동 50%이상 이행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선수의 보호관찰기간을 절반 이상 경감해주기로 했다. 이제 시간만 지나면 그들은 다시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다. 하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연맹의 섣부른 결정에 반기를 든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아마추어리그인 챌린저스리그에서 불법도박사이트와 연계된 사건이 벌어졌다. 전화중계를 한 외국 국적의 유학생이 붙잡혔다. 가슴이 철렁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 심정이랄까. 아무리 단속해도 불법도박사이트 근절은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더 심각한 상황이 수면 아래에서 꿈틀되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2년 전 적발된 선수들은 그간 엄청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봉사활동을 통해 뉘우침의 시간도 가졌을 것이다. 연맹도 이만하면 됐다고 판단해 그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판이다. 민심과의 온도차가 너무 크다. 그 시간만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들이 그라운드에 돌아온다고 해서 반길 팬은 없다. 오히려 역효과만 날뿐이다.

형평성도 맞지 않는다. 작년 10월 연맹 이사회에서 보호관찰기간이 50% 이상 경과한 대상자 8명 중 봉사활동 50% 이상 이행하고 단순 가담한 7명에 대해 보호관찰 기간을 2년에서 1년6개월로 경감한 바 있다. 당시엔 보호관찰기간 절반 이상 경과한 선수가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보호관찰기간 5년도 경감한 걸 보면 원칙도 없다. 느닷없이 경감 조치가 내려진 저의가 의심스러울 뿐이다.

나도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그들의 앞날이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때가 아니다. 지금은 2년 전 약속했던 재발방지대책을 점검해볼 시기다. 발본색원하겠다는 다짐이 잘 지켜지고 있는 지 되돌아보는 게 지금 할 일이다. 그들을 진정 돕고 싶다면, 아니 생활고를 해결해주고 싶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라운드가 아니라 축구 관련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알선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경감조치 확정을 위해서는 대한축구협회 이사회가 최종 승인을 해야 한다. 이달 말 또는 내달 초에 열린다. 항간에는 연맹 이사회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한다. 이미 결정은 끝났다는 얘기다. 만약 그렇다면 축구협회도 이번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정몽규 회장에게 묻고 싶다. “회장님은 그 때의 악몽을 벌써 잊으셨습니까.”

스포츠 2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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