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국의 사커에세이] 에이전트 몰래 선수 사고파는 ‘슈퍼 갑’ 구단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3년 1월 5일 07시 00분


누가 당신의 물건을 한마디 상의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팔려고 내놓는다면? 아마도 주인은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 것이다. 프로축구 이적시장만 되면 위와 비슷한 일을 당하고 허탈해하는 에이전트들이 적지 않다. 자기도 모르게 소속 선수가 다른 구단으로 팔려나가는 것을 뒤늦게 알고 분통을 터트리지만 정작 하소연 할 곳은 마땅치 않다. 영원한 ‘갑’인 구단을 상대로 불평을 하다간 자칫 더 큰 손해를 입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선수는 물건도 아니거니와 선수 소유권은 구단에 있기 때문에 자기 물건을 주인 모르게 팔아버린 경우와 같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불쾌감과 모멸감은 그 못지않다.

실제로 국내 프로축구에선 엄연히 선수를 대리하는 에이전트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3의 에이전트와 구단이 공모해 은밀히 선수를 사고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맹 규정도 이런 행위가 가능하도록 방임하고 있다. 선수는 원 소속 구단보다 연봉(혹은 기본급 연액)을 한 푼이라도 더 주면 이적을 거부할 수 없다(K리그 규정 제33조 2항)는 규정은 국제 이적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악법이다. ‘로컬 규정 존중’이라는 FIFA의 원칙을 K리그가 너무 남용하고 있지 않은지 한번쯤 짚고 넘어가 볼 일이다.

에이전트 몰래 선수를 사고파는 행위는 또 다른 불협화음을 야기한다. 실제 선수대리인과의 수수료 분쟁이다. 만일 구단이 선수대리인에게 선수 연봉협상에 따른 수수료(대체로 연봉의 5∼10%)를, 제3의 에이전트(구단대리인)에겐 이적 수수료(이적료의 5%)를 각각 지급하면 문제 될게 없다. 하지만 수수료를 이처럼 두 가지로 나눠 지급하는 구단은 현실적으로 없다는 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실제 구단이 수수료 액수를 정해놓고 에이전트들끼리 알아서 나눠가지라는 식으로 일처리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아주 무책임한 것이다. 심지어 구단대리인이 선수도 모르게 연봉수준까지 정해버리기는 황당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제 역할을 빼앗긴 선수대리인, 그리고 그런 에이전트를 믿어온 선수는 어떻게 될까. 또 그 둘의 관계는?

이런 분쟁을 막기 위해선 이적협상에 제3의 에이전트가 개입되는 것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나아가 이적협상은 유럽처럼 구단끼리 직접 하는 게 바람직하다. 수수료의 가장 큰 부분이 이적협상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예산낭비도 막을 수 있고, 선수대리인에게 연봉 수수료만 지불하기 때문에 분쟁의 소지도 없다. 굳이 구단대리인을 선임하고자 한다면 수수료는 구단대리인, 선수대리인 두 명에게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 유럽에선 이것이 상식이다.

이적 수수료가 크기 때문에 여기에 올인하는 에이전트가 하나 둘 늘어나면서 국내 이적시장은 점점 엉망이 돼가고 있다. 과거 한 두명의 에이전트가 구단과의 친분관계를 이용해 이러한 거래로 재미를 보자 이젠 너도 나도 여기에 뛰어드는 추세다. 올 겨울이적시장부터라도 페어플레이가 정착되길 기대해본다.

(주)지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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