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장효조 너무 잘 나가, 신인상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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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8일 07시 00분


OB 김상호의 1995년 시즌 MVP 수상은 삼성과의 연대 덕분이었다. 선발 20승을 거둔 LG 이상훈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LG는 창단 이래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시즌 MVP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OB 김상호의 1995년 시즌 MVP 수상은 삼성과의 연대 덕분이었다. 선발 20승을 거둔 LG 이상훈은 눈물을 흘려야 했다. LG는 창단 이래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시즌 MVP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잊지못할 MVP·골든글러브 투표

82년 신인왕은 장효조보다 못한 박종훈
탈락 이유는 “거물급 신인, 신선함 없어”


84년 ‘1할 타율’ 유두열 한방으로 MVP
4승 투수 최동원 탈락…최대 아이러니

95년 OB ‘MVP 먹기’ 삼성과 홍보 연합
김상호, 20승 투수 이상훈 제치고 압승


지금 우리는 중요한 선거를 앞뒀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19일 치러진다. 프로야구에도 1년을 결산하는 투표가 있다. 시즌 최우수선수(MVP)와 12월 11일의 골든글러브 투표다. 프로야구는 30여년간 많은 투표를 했다. 이 가운데 몇몇의 투표 결과는 아직도 술자리의 안주거리가 될 정도로 많은 뒷말을 낳았다. 논리나 이성보다는 감성에 따라 결정하는 투표의 본질을 보여줬던 아날로그 시대의 투표를 되돌아봤다.

1985년 통합우승을 이룬 삼성은 김시진, 이만수, 장효조를 두고 시즌 MVP에 대한 교통정리를 못했다. 해태 김성한이 어부지리를 얻었다. 사진은 삼성 선수 시절의 이만수 SK 감독. 스포츠동아DB
1985년 통합우승을 이룬 삼성은 김시진, 이만수, 장효조를 두고 시즌 MVP에 대한 교통정리를 못했다. 해태 김성한이 어부지리를 얻었다. 사진은 삼성 선수 시절의 이만수 SK 감독. 스포츠동아DB


○‘신인 냄새가 나지 않는다’던 1983년의 장효조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1983년 첫 신인왕을 배출했다. 주인공은 OB 박종훈. 성적은 타율 0.312, 3홈런, 24타점(최다안타 1위·출루율 5위)이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출전으로 프로 진출을 1년 미뤘던 스타들이 모두 참가한 그해, 눈에 띄는 성적을 올린 신인은 따로 있었다. 삼성 장효조였다. 타율 0.369, 18홈런, 62타점(타격 1위·홈런 3위·득점 2위·출루율 1위·최다안타 1위)을 기록했다. 박종훈은 성적으로만 보자면 장효조보다 떨어졌다.

그러나 투표인단의 생각은 달랐다. 장효조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워낙 거물급 선수라 신선감이 떨어진다는 이유가 표면적이었다. 너무나 유명한 스타에게 신인상을 준다는 것이 어색하기는 했다. 숨겨진 또 다른 이유는 투표인단과의 관계. 매스컴과 비친화적인 장효조에 비해 박종훈의 평판이 좋았다. 그렇게 역사는 만들어졌다.

○타격 3관왕도 물먹은 시즌 MVP, 4승 하고도 놓친 한국시리즈 MVP

1984년은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 MVP를 두고 숱한 말들이 나왔다. 페넌트레이스 MVP는 27승의 최동원(롯데)에게 돌아갔다. 경쟁자는 타격 3관왕의 이만수(삼성). 홈런·타점·타율의 3관왕이 고배를 마신 것은 경쟁자였던 롯데 홍문종에게 9연속 4구를 내주며 정정당당한 대결을 막았던 행위에 대한 반발이 결정적이었다. 게다가 이만수는 1983년 시즌 MVP였다.

투표시기도 문제였다. 한국시리즈 최종일에 MVP 투표를 동시에 했다. 롯데 유두열은 7차전 역전 결승 3점홈런으로 한국시리즈 MVP가 됐다. 타율 0.143, 3타점. 역대 한국시리즈 MVP 가운데 가장 낮은 타율이다. 워낙 극적인 한방이라 받을 가치는 있었지만, 시리즈 4승 투수가 MVP를 놓쳤다. 한국시리즈 MVP 투표의 최대 아이러니다. 경기장의 흥분 때문에 취재진이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 명의 선수에게 2개의 MVP를 몰아주는 것보다는 나눠주는 것이 좋은 모양새라는 생각도 있었다.

○전·후기 통합우승팀이 놓친 1985시즌 MVP

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하게 가을잔치가 벌어지지 않았던 1985년. 삼성은 전·후기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시즌 최고승률(0.706·77승1무32패)이었다. 페넌트레이스 MVP 후보도 삼성이 다수 배출했다. 김시진(다승 공동 1위), 장효조(타격 1위·홈런 3위·득점 1위·출루율 1위), 이만수(홈런 공동 1위·타점 1위·타격 5위)였다. 투표 결과는 의외였다. 해태 김성한(홈런 공동 1위·타점 2위·최다안타 1위)에게 돌아갔다. 삼성이 후보 3인에 대한 교통정리를 못한 틈을 파고든 해태는 투표인단에게 “1위는 삼성이 당연하다. 우리는 창피당하지 않게 2등만 찍어달라”며 감성에 호소했다. 그해 시즌 MVP 투표는 투표인단이 1∼3위를 찍는 방식이었다. 1위 5점, 2위 3점, 3위 1점으로 총점을 합산했다. 장효조는 예상 밖의 결과에 한동안 말을 잃었다.

○서울 구단의 자존심 대결…1995년과 1998년의 시즌 MVP 투표

서울 라이벌이 자존심을 걸고 투표운동을 하던 때도 있었다. 1995년과 1998년이다. LG는 1995년 20승투수 이상훈, 1998년 공동 다승왕 김용수를 시즌 MVP 후보로 냈다. OB는 홈런과 타점 1위 김상호(1995년)와 타이론 우즈(1998년)가 후보였다. 특히 1995년은 대단했다. 시즌 내내 1위를 달리던 LG를 제치고 OB가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고, 이상훈은 플레이오프 롯데전에서 부진했다. 당시 OB 홍보팀장이었던 구경백 현 일구회 사무총장의 회고. “김상호가 이상훈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고민하다 삼성의 김상두 홍보부장과 연합작전을 폈다. 삼성의 신인왕 후보 이동수와 OB의 김상호를 공동으로 밀기로 했다. 투표를 앞두고 두 팀의 홍보 담당이 지방의 언론사들을 돌며 홍보를 했다. 스킨십 강화였다.” 투표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압승이었다. 강정환 당시 LG 사장은 “OB에 진 것이 아니라 구경백 한 사람에게 졌다”고 한탄했다. 1998년에도 김용수가 우즈에게 패했다.

전문기자 marco@donga.com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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