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탄생] 땡땡이 유지훤-알까기 이건열 포스트시즌 속죄의 방망이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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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0일 07시 00분


술자리 주먹다짐으로 위기에 몰렸던 OB 유지훤(왼쪽)은 1982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날려 ‘속죄’에 성공했다. 해태 이건열도 1991년 빙그레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동점포와 역전포를 연이어 날려 자신의 실책으로 인한 실점을 완벽하게 만회했다. 스포츠동아DB
술자리 주먹다짐으로 위기에 몰렸던 OB 유지훤(왼쪽)은 1982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날려 ‘속죄’에 성공했다. 해태 이건열도 1991년 빙그레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동점포와 역전포를 연이어 날려 자신의 실책으로 인한 실점을 완벽하게 만회했다. 스포츠동아DB
10월 10일…프로야구 역사속 오늘

유지훤, 1982년 KS 2차전 후 술집서 싸움
KS 5차전 끝내기안타…죽기살기 속죄 한방

이건열, 1991년 KS 2차전 실책 교체위기
바꿀 선수 없어 계속 뛰다 홈런 두방 역전


공교롭게도 ‘속죄’와 관련된 2명의 전설이 등장한다.

첫 주인공은 OB 유지훤이다. 1982년 10월 10일 OB-삼성의 한국시리즈 5차전. 홈런 2발씩을 주고받는 타격전 끝에 9회말 1사 3루서 유지훤이 삼성 이선희를 상대로 끝내기안타를 쳤다. 5-4 승리. 유지훤은 2차전을 마친 뒤 대구에서 윤동균 김유동 이홍범 등과 술을 마시다 옆자리의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을 벌였다. 경찰차까지 출동한 사건이었다. 구단도 그 사실을 알았다. 사건에 연루된 선수들은 “우승을 못하면 우리 모두 옷 벗게 생겼다”며 시키지 않아도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유지훤으로선 속죄의 한 방이었다.

부산에서 전차를 운전했던 부친의 직업 때문에 선수시절 ‘땡땡이’란 별명으로 불렸던 유지훤은 OB∼두산의 3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에 선수와 코치로 모두 참여한 유일한 인물이다. 흔히 아는 그 땡땡이가 아니다.

속죄의 두 방도 있었다. 해태 이건열이다. 1991년 10월 10일 해태-빙그레의 한국시리즈 2차전 때다. 이건열은 1회 빙그레 장종훈의 우전안타를 빠트려 첫 실점의 주범이 됐다. 김응룡 해태 감독은 당장 교체하려고 했지만 벤치에 마땅한 선수가 없었다. 화는 나지만 꾹 참았다. 이건열은 3회 1사서 한용덕을 상대로 동점 중월솔로홈런을 터뜨렸다. 자신이 내준 점수는 일단 만회했다. 5회 이건열은 왼쪽 폴을 맞히는 역전 홈런으로 속죄를 했다.

군산상고∼동국대 출신의 이건열은 ‘인생은 줄’이라는 것을 보여준 케이스. 선수로서 빼어난 자질을 지니고 있었으나 딱 하나가 문제였다. 그의 앞에 김성한이 있었다는 것. 1루수 자리는 언감생심. 김응룡 감독은 김성한과 경쟁시키기 위해 훈련 때 1루로 가라고 지시했지만, 무서운 선배는 뒤에서 감독 몰래 이렇게 말했다. “야, 너 빨리 외야로 안 나가.” 그래서 이건열은 한동안 1루수용과 포수용 미트, 외야수용 글러브 등 3개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사람 좋은’ 이건열은 해태에서만 12시즌 동안 타율 0.240에 30홈런 252타점을 남겼다.

1995년 10월 10일 롯데 주형광은 LG와의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놀라운 피칭을 했다. 27타자를 상대로 1안타 완봉승을 거뒀다. LG 김기범과의 선발 대결에서 주형광의 공은 ‘언터처블’이었다. 6회 이우수에게 안타만 맞지 않았더라면 퍼펙트도 가능했던 페이스였다. 포스트시즌 최초의 무4사구 1안타 완봉승. 그날 패배로 LG는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LG는 구본무 회장 취임 첫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목표로 삼았지만 물거품이 됐다.

1999년 10월 10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두산과 한화의 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렸다. 양대리그제가 처음 시행된 그 해, 드림리그 1위를 차지한 최고 승률의 두산이 매직리그 2위 한화에 4전패로 탈락한 시리즈다. 그 계기가 1차전서 나온 두산 우즈의 실책성 플레이. 1회 0-1로 뒤진 무사 1·3루. 한화 조경택의 1루 강습 땅볼을 잡은 우즈는 1루를 먼저 찍고 2루로 던지는 ‘리버스 포스 더블플레이’를 시도했다. 태그플레이가 되면서 1루주자는 1∼2루 사이서 런다운에 걸렸다. 그 사이 3루주자가 홈을 밟았다. 타구가 빨라 3루주자가 홈을 엿보기 힘든 상황이었던 만큼, 1루주자를 2루서 먼저 잡고 타자주자를 1루서 아웃시키는 편(포스 더블플레이)이 맞았다. 나중에 우즈는 왜 그랬는지 자신도 모르겠다며 아쉬워했다.

2001년 10월 10일 두산-현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선 김재박 감독의 꼼수가 승패를 갈랐다. 0-1로 뒤진 현대의 8회 공격. 1사 만루서 두산 박명환이 심정수를 3구삼진으로 잡았다. 김 감독이 나왔다. 임채섭 주심에게 “그게 왜 스트라이크냐”며 항의했다. 시간만 끈 뒤 돌아갔다. 이어 이숭용 타석에서 박명환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지자 또 나왔다. 이번에는 투구폼을 문제 삼았다. “세트포지션에서 정지동작 없이 던졌으니 보크 아니냐”며 따졌다. 어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박명환의 투구리듬은 무너졌다. 어깨도 식었다. 그걸 노린 것이었다. 결국 밀어내기 4구가 나왔고 동점에서 박명환은 강판됐다. 현대가 그 회 5점을 뽑았다.

2010년 10월 10일 삼성과 두산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역사에 남을 혈투를 벌였다. 연장 11회까지 4시간58분, 두 팀 합쳐 투수 16명(삼성 7명·두산 9명), 4구 19개(삼성 11개·두산 8개)가 나오는 난전이었다. 이런 경기는 팬서비스용으로는 최고다. 취재진은 ‘막장경기’라고 부른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bga.com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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