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감독’ 8년만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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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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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용 한화 새 감독 선임

“나한테 뭐 할 말 있소?”

야구 기자 초년병 시절이던 1999년 어느 날 해태의 홈구장인 광주구장 더그아웃에서 ‘코 감독’이 처음 만난 기자에게 한 말이다. 기자들은 당시 김응용 감독(71·사진)을 ‘코끼리 감독’ 또는 ‘코 감독’이라고 불렀다. 코 감독이 누군가. 해태를 한국시리즈 9번 우승으로 이끈 명장이자 무섭기로 이름난 호랑이 중의 호랑이 아닌가. “아, 예. 그냥 인사드리려고요.” 쭈뼛거리며 이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선수들이나 코치들은 더했다. 제대로 김 감독의 눈을 마주 보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 불호령이라도 떨어질까 무서워 김 감독을 피해 다녔다.

한창 때엔 이런 일도 있었다. 대만 전지훈련 중 한 직원이 심심풀이 삼아 선수의 배트를 몇 차례 휘둘러 보다가 김 감독에게 딱 걸렸다. 김 감독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야, 뛰어”였다. 그 직원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까지 야구장을 달려야 했다.

이처럼 김 감독은 카리스마의 대명사 같은 존재였다. 바로 그 김 감독이 8년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다. 그것도 70세를 넘긴 나이에 프로야구 팀의 지휘봉을 잡는다.

올 시즌 최하위에 머문 한화는 제9대 감독으로 김 감독을 선임했다고 8일 밝혔다. 김 감독은 계약 기간 2년에 계약금 3억 원과 연봉 3억 원 등 총 9억 원을 받는다. 김 감독은 2000년 말 삼성으로 옮긴 뒤 2002년 한 차례 더 우승을 차지해 ‘한국시리즈 10회 우승 신화’를 달성했고, 2004 시즌을 마지막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이후엔 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구단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라 2010년까지 삼성 야구단 사장을 지냈다.
▼ 독수리 타고 ‘한국시리즈 11승’ 날겠다 ▼

올해 7월 촬영한 김응용 감독의 모습에 한화 유니폼을 합성한 사진.
올해 7월 촬영한 김응용 감독의 모습에 한화 유니폼을 합성한 사진.
기록에서 드러나듯 성적과 연륜에 있어선 김 감독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김 감독은 해태와 삼성에서 22시즌 동안 2653경기에서 1463승 65무 1125패를 기록했다. 승률 0.565다. 무엇보다 단기전인 한국시리즈를 10번 제패한 게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냉혹한 승부사’였던 김 감독은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감독 첫해인 1983년 6월 14일 OB전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경기 후 심판을 구타한 것을 시작으로 숱한 사고(?)를 쳤다. 쓰레기통 집어 던지기, 의자 걷어차기, 욕설하기 등등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5번의 퇴장을 당한 감독이기도 하다.

선수들도 냉정하게 대했다. 해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국보 투수’ 선동열 KIA 감독은 “그렇게 팔이 빠지게 던졌어도 감독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건 단 두 번밖에 없다”고 했다. 그나마 “수고했다”란 짧은 말이 다였다고.

삼성 감독으로 옮긴 첫해인 2001년에는 ‘국민타자’로 칭송받던 이승엽을 “4번 타자로서 영양가가 없다”며 6번 타순으로 내린 적도 있다. 당시 이승엽은 그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코피를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김 감독은 속정이 깊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각종 기록을 세운 양준혁(현 SBS 해설위원)이 대표적인 수혜자다.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양준혁은 1999년 해태로 트레이드되자 유니폼을 벗으려 했다. 김 감독은 당시 “1년만 뛰면 다른 팀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시즌이 끝난 뒤 그를 LG로 보냈다. 이후 선수협 사태로 각 팀에 미운털이 박혀 갈 곳이 없어진 양준혁을 다시 삼성으로 데려온 것도 김 감독이다.

2004년 8월 SK와의 경기 도중 빈볼 시비 끝에 상대 용병 선수들이 방망이를 들고 삼성 더그아웃에 난입하자 그 선수에게 헤드록(팔로 머리 감아 조이기)을 걸어 제압한 일도 유명하다. 김 감독은 당시 “내 선수 내가 지켜야지 누가 지켜”라고 했다. 그는 또 젊고 가정 형편이 좋지 않은 선수들을 자기 집에서 함께 살게 하기도 했고, “선수는 잘 먹어야 한다”며 미군 부대에서 스테이크를 구해 와 먹이기도 했다.

그동안 김 감독이 이뤄 온 업적을 폄훼하는 사람도 있다. 그 좋은 멤버로 누군들 우승하지 못했겠느냐는 거다. 당시 해태와 삼성은 스타플레이어들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기 싸움에서 스타선수들을 이겼고, 구슬을 꿰어 보배를 만들었다.

현재 최약체로 평가받는 한화에서 그는 자신의 명성을 이어 갈 수 있을까. 그건 아마 프런트와의 관계에 달려 있을 듯하다. 해태 시절 박건배 구단주는 회식이나 술자리가 있을 때면 김 감독을 상석에 모셨다. “내가 감독을 높이 봐야 선수, 코치들도 감독을 잘 따를 것 아니냐”는 게 이유였다. 삼성 감독 시절에도 김 감독은 선수단 운영 등에 있어서 전권을 보장받았다. 한대화 전 감독 시절 한화는 현장보다는 프런트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강했다. 김 감독의 카리스마가 어떻게 한화의 고질적인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김응용#한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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