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빠진 여자하키 영웅 진원심, 스틱 대신 배트…“녹색 운동장은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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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8일 07시 00분


글로리아의 유격수 진원심 씨는 1980년대 세계 최고의 필드하키 공격수로 아시안게임 금메달,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푸르른
 필드가 언제나 그리웠던 최고의 하키선수는 이제 배트를 휘두르며 활짝 웃는다. 익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글로리아의 유격수 진원심 씨는 1980년대 세계 최고의 필드하키 공격수로 아시안게임 금메달, 올림픽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푸르른 필드가 언제나 그리웠던 최고의 하키선수는 이제 배트를 휘두르며 활짝 웃는다. 익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1986 아시안게임 금·1988 올림픽 은…
은퇴후 다른 운동 했지만 가슴 한 곳 허전
야구 시작하면서 다시 신바람 열정 불끈
타고난 운동감각 살려 유격수·도루왕 펄펄


그라운드에 들어서기 직전 그녀의 표정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46세 중년 부인은 마치 어린아이가 소풍을 간 듯, 활짝 웃으며 그라운드로 달려 나갔다. “푸르른 필드가 언제나 그리웠어요. 그리고 녹색 그라운드가 나를 다시 불렀죠.” 1980년대 세계적인 필드하키선수로 국제무대를 누볐던 스포츠영웅은 그렇게 야구선수가 되어 있었다.

‘2012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가 열린 15일 전북 익산 국가대표야구전용훈련장. 전북 JTCR과 경기를 앞둔 서울 영등포 글로리아의 유격수 진원심 씨는 힘껏 스윙 연습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같은 공을 때리는 것이지만 하키는 중심을 최대한 앞쪽까지 끌고 나와야 해요. 그런데 야구는 정반대잖아요. 타석에만 서면 자꾸 몸이 앞으로 쏠려서….”

강렬한 햇빛과 야구장의 녹색 잔디는 사실 진 씨가 10대 후반부터 20대 모두를 바친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중학교까지 육상을 하다가 그녀의 빠른 발에 주목한 하키부로 스카우트됐다. 그리고 1년 만인 고교 2학년 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1982뉴델리아시안게임 은메달, 1986서울아시안게임 금메달, 1988서울올림픽 은메달, 1990베이징아시안게임 은메달까지 쉼 없이 달렸다. 백마장과 맹호장, 대통령 표창 등 수많은 훈장과 상패를 수상한 여자하키의 영웅에게 녹색 잔디는 젊음을 모두 바친 성지였다.

진 씨는 “서울올림픽에서 호주를 이기지 못해 금메달을 따지 못했어요. 왼쪽 무릎이 파열돼 수술을 받은 상태였지만, 호주는 꼭 한번 이기고 싶어서 1992년 초청경기에서 호주를 이기고 은퇴했죠.

유니폼을 벗은 뒤에도 바쁘게 살았어요. 에어로빅 무료 강사로 자원봉사도 하고, 여성체육회에서 활동도 하고. 그래도 항상 무엇인가 아쉬움이 있었는데, 야구와 인연을 맺으면서 이렇게 신나게 뛰고 있어요”라며 웃었다.

필드하키에서 세계적인 공격수였던 진 씨는 이제 녹색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도루왕, 명유격수로 맹활약하고 있다.

하키 영웅이자, 1남2녀의 어머니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중전안타를 날리고 2루 도루에 성공했다. 동료들을 항해 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20년 전 태극마크를 달고 필드를 누볐던 소녀, 그대로였다.



익산|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트위터 @rush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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