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고졸까지 최소 1억…등골탑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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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8일 07시 00분


야구선수 자녀를 둔 부모들은 프로선수로 성장시키기까지 많은 투자를 한다. 투자 대비 성공 비율이 점차 낮아지면서 야구 꿈나무들도 줄어드는 추세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열린 신인지명회의. 스포츠동아DB
야구선수 자녀를 둔 부모들은 프로선수로 성장시키기까지 많은 투자를 한다. 투자 대비 성공 비율이 점차 낮아지면서 야구 꿈나무들도 줄어드는 추세다. 사진은 지난해 8월 열린 신인지명회의. 스포츠동아DB
야구선수 뒷바라지의 경제학

야구부회비 월평균 100만원·해외전훈 300만원…
고교졸업후 진로 프로-2년제 대학-4년제 대학순

지명제도 바뀌어 계약금 등 스카우트 전쟁 사라져
부모들 FA대박 꿈꾸며 프로드래프트에 사활 걸어


“집안을 빨리 망하게 하려면 자식에게 정치를 시키고, 천천히 망하게 하려면 골프를 시켜라.” 어느 여자프로골퍼 아버지의 말이다. 그만큼 자식을 프로골퍼로 만드는 일은 힘들다.

조창수 전 삼성 감독은 2명의 딸(조윤희·윤지)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선수로 만들었다. 요즘도 가끔 둘째 조윤지를 위해 골프백을 들고 캐디로 나서는 그는 “야구로 번 돈을 다 썼다”고 말했다. 그래도 두 딸은 투어프로가 됐다. 투자에 성공한 케이스다. 골프만큼은 아니지만, 야구도 만만치 않은 돈을 필요로 한다. 아마추어선수의 부모는 힘들다. 잘 먹여야 하고, 야구부 회비도 꼬박꼬박 내야 한다. 매일 선수 합숙소에서 같이 생활하다시피 해야 한다. 힘든 뒷바라지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 길은 자식이 프로에 가는 것이다.

○야구선수 뒷바라지의 경제학

리틀야구부터 시작해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선수에게 투자되는 비용은 어느 정도일까. 학교마다, 선수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프로 스카우트들은 “최소 1억원은 든다”고 입을 모은다. 근거는 이렇다.

우선 야구부 회비. 매달 최소 50만원에서 최대 150만원을 낸다. 100만원을 평균으로 삼았을 때 중·고교 6년간 7200만원이 들어간다. 해외로 전지훈련을 가면 회당 최소 300만원이 든다. 대회 출전경비도 내야 한다. 선수들을 버스로 이동시키려면 최소 70만원이다. 소속팀이 우승을 하거나 전국대회 4강에 들었을 경우 코칭스태프 보너스도 줘야 한다. 이 때문에 소속팀이 우승하는 것을 꺼리는 학부모도 많다. 학교에서 장비를 지원하는 경우도 많지만, 개별적으로 더 좋은 장비를 마련해줘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부상을 당했을 경우 수술 등 치료비용도 부모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유급도 다반사다. 혹시 다치면 1년을 쉰다. 부모의 투자비용 1년치가 더 들어간다는 의미다.

여기까지는 공식적 비용이다. 비공식적으로 들어가는 돈도 부담스럽다. 생업을 미루고 자식 뒷바라지에 매달리는 부모도 많다.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건 야구부 학부모 사이에는 실력과 학년에 따라 계급이 생긴다. 그것을 따라야 한다. 그래서 부모들은 비정규 레슨도 시킨다. 같은 팀 선수끼리도 몰래 레슨을 받는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어느 은퇴 프로야구인은 투수과외를 해준다며 1년에 몇 천 만원을 요구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프로드래프트는 학부모에게 운명의 시간

프로야구 9개 구단은 20일 2013년도 신인드래프트를 실시한다. 학부모들에게는 운명의 날이다. 만일 이번 드래프트에서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하면 2년 또는 4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고교선수들에게 요새는 프로행이 첫 번째 선택이다. 2년제 대학이 두 번째 선택이다. 물론 전통의 명문대를 선호하는 선수도 있지만, 4년제 대학은 세 번째 선택으로 밀려나는 추세다. 대학에 진학하면 부모는 한시름 놓을 수 있다. 대부분의 대학이 숙소생활을 보장해주고 체육특기자로 등록금 등을 면제해준다. 이 혜택만 받아도 4년간 1억원 가량의 돈을 절약할 수 있다. 그동안 투자한 비용은 건진다. 요즘 한 과목당 수십만 원이 넘는 비싼 과외비에 엄청난 수시전형료, 입시원서 비용 등으로 부모들의 등골이 휘는 현실을 고려하면 야구가 공부보다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한때 학부모에게 좋은 시절도 있었다. 프로구단과 대학간의 스카우트 전쟁이 불었던 1990년대다. 돈다발을 들고 구단이 찾아왔다. OB는 1991년 겨울 휘문고 임선동에게 수표 3억원이 든 가방을 보여줬지만 퇴짜를 맞았다. 당시 서울 라이벌 LG는 OB가 먼저 유망주와 접촉하면 “그 제시액에 5000만원을 더 얹어줄 테니 우리 팀에 오라”고 유혹했다.

요즘은 스카우트 전쟁이 사라졌다. 지명제도가 바뀐 탓이다. 선수와 부모들도 프로 진출을 더 원한다. 나이가 어려야 프리에이전트(FA)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계산도 프로 진출을 서두르게 했다. 경쟁이 사라지자, 계약금도 줄었다. 올 4월 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 회원대학 총장 17명은 금전 스카우트 중단을 결의했다. 한동안 메이저리그 진출 바람도 불었지만, 그 역시 뜸해졌다. 미국에 가봐야 고생만 하고 야구실력이 준다는 사실을 한국으로 복귀한 선수들로부터 배웠다. 그러다보니 계약금은 갈수록 적어진다. 연봉도 제자리걸음이다. 프로 입단 첫해 연봉 2400만원은 몇 년째 요지부동이다. 1982년 A급 선수의 연봉이 2400만원이었다. 1982년 직장인의 10년치 연봉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프로야구는 탄생했다. 그 말은 지금 거짓말이 됐다.

요즘 스카우트들은 갈수록 꿈나무가 준다고 하소연한다. 한때 반짝했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효과도 희미해졌다.

현재 프로 1군 선수와 프로지명선수의 실력 격차는 4∼5년 정도다. 프로 지명을 받더라도 2군에서 오랜 기간 훈련해야 1군 선수로 출전이 가능하다. 이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미래의 희망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서 학부모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돈은 많이 들고 보장은 적어진 프로야구를 보며 부모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드래프트가 더 걱정된다.

marco@dobga.com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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