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욕고수, 장원삼… 다승 공동선두 신나는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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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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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차도 치장도 관심없어
욕심 없는 꾸준함으로 롱런

그는 연봉 2억5000만 원을 받는 잘나가는 야구 선수다. 프로 생활 7년 동안 적지 않은 돈도 모았다. 하지만 이 남자, 이상하다. 자기 명의로 된 자동차 한 대 없다. 동료 선수 대부분이 고급 외제차를 모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게다가 집도 없다. 아직도 일부 총각과 2군 선수들이 머무는 구단 기숙사에 산다. 올 시즌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다승 공동 선두를 질주하고 있는 삼성의 왼손 에이스 장원삼(28·사진) 얘기다.

○ ‘대기만성’형 야구 인생


그가 처음부터 잘나간 건 아니었다. 경남 마산용마고 재학 시절 프로는 꿈도 꾸지 못했다. 직구 최고 구속이 시속 130km대 중반에 그쳤고 청소년 대표 유니폼 한 번 입어 보지 못했다. 전체 89순위로 현대에 지명됐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로 경성대 진학을 결정했다. “선수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야구로 안되면 대학 졸업 후 다른 일을 하자’고 편하게 생각했다.”

욕심을 버리니 실력이 늘었다. 팔에 힘이 붙고 직구 속도도 최고 시속 140km를 넘었다. 대학 3학년 때 세계대학선수권 대표에 처음 발탁됐다. 2006년 현대에 입단해 신인으로서 12승을 챙겼다. 인생 2막이 펼쳐진 것이다.

○ 씁쓸한 2인자 인생

서광이 비치려던 순간 먹구름이 끼었다.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다는 괴물 신인 류현진(한화)이 2006년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신인왕과 최우수선수상(MVP)은 모두 류현진의 차지였다. 2007년엔 류현진의 대항마로 떠오른 김광현(SK)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장원삼은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제 몫을 했지만 그의 역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원삼은 2011년 아시아시리즈에서 2승을 거두며 MVP가 됐을 때도 아쉬운 기억이 있다. 장원삼은 “1회 대회 MVP 부상이 자동차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트로피만 달랑 받고 왔다. 내 인생이 원래 좀 그렇다”며 웃었다.

○ 롱런의 비결은 ‘무욕’

그렇다. 장원삼에게는 류현진의 빠른 공과 김광현의 와일드한 투구폼 같은 화려함은 없다. 하지만 그는 꾸준함을 무기로 마운드에 올랐다고 했다. “2인자라는 수식어라도 없었으면 지금만큼 주목받았을까. 만약 내가 류현진처럼 주목받는 스타였다면 야구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욕심 없이 야구를 했기에 큰 수술 한 번 안 하고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장원삼은 ‘바람둥이’ 같은 곱상한 외모지만 속이 꽉 찬 총각이다. “내 야구 인생처럼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집도, 차도 별로 관심이 없다. 무욕(無慾)이 내 롱런 비결이다.”

만년 2인자였던 장원삼은 올 시즌 1인자가 될 기회를 잡았다. 시즌 초 1이닝 8실점 수모를 당했지만 10일 현재 다승 공동 1위(9승)에 올랐다. 그는 “올해만큼은 15승 이상 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왼손 대표 에이스 류현진 김광현 옆에 내 이름을 나란히 끼워 넣고 싶다”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야구#프로야구#장원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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