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구단 동일시…“내가 나서야 돼” 과격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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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2일 07시 00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서포터의 일탈 행동은 일부 팬들이 구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팬들이 
20일 수원과 FA컵 16강전 이후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은 채 난동을 부리고 있다. 상암|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서포터의 일탈 행동은 일부 팬들이 구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팬들이 20일 수원과 FA컵 16강전 이후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은 채 난동을 부리고 있다. 상암|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FC서울 서포터스 집단소동…전문가들이 분석한 ‘앵그리 서포터스’의 심리

“내가 쓴 돈이 얼만데” 보상심리 한몫
군중심리와 맞물릴땐 걷잡을 수 없어


FC서울이 FA컵 16강전에서 라이벌 수원 삼성에 패한 20일 밤. 30여 명의 성난 서울 팬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 주차장에서 홈 선수단 버스를 가로 막았다. 일부는 출구 앞에 아예 드러누웠다. 이들은 서울 최용수 감독의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경찰이 출동하자 “왜 경찰을 부르냐. 우리가 이 정도 존재밖에 안 되나”며 소동을 피웠다. 서울 구단 직원이 “한 달 안에 최 감독과 만남을 주선 하겠다”고 가까스로 달랜 뒤에야 사태가 진정됐다. 서울 선수들은 밤 11시가 넘어 겨우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심심치 않게 반복되는 서포터의 소동. 팀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생긴 일이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너무 큰 문제가 돼 버렸다. 이들은 왜 이런 과격행동을 하는 것일까. 이런 소동으로 얻고자하는 것은 뭘까. 서포터 일탈 행동의 원인을 심리학적 측면에서 접근해 봤다. 스포츠심리학 전문가인 체육과학연구원(KISS) 김용승 박사, 동의대학교 운동처방재활학과 신정택 박사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곧 구단

서울은 현재 리그 1위다. 아무리 라이벌전에서 졌지만 팬들의 요구는 무리한 것이었다. 사실 감독이 서포터 앞에 서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경기 후 소감이나 전술 등은 공식 인터뷰를 통해 말했고, 기사화된 것으로 충분하다.

일부 팬들은 시간이 지나도 최 감독이 버스에서 나오지 않자 “감독이 얼굴 한 번 비추면 될 걸 왜 안 나오느냐”고 따졌다. 감독에게 패배의 이유를 듣고 싶은 건지 자신들 앞에서 감독이 머리 숙여 읍소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건지.

신정택 박사는 “이런 행동을 동일시라고 한다. 축구와 야구 같은 특정종목 또 특정종목 중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린 특정구단에 많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사실 관중은 경기력 자체에 관여할 수 없다. 아무리 답답해도 경기 중 그라운드에 뛰어들 수는 없다. 하지만 구단 운영이나 감독 전술 등에 대해 이들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이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구단 홍보 같은 것을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한다든지, 구단이 잘못 했을 때는 앞장서 따끔하게 지적하는 등 분명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그러나 도를 넘었을 때 문제가 생긴다. 신 박사는 “이들은 스스로를 진짜로 10번째 선수(야구), 12번째 선수(축구)라고 느낀다. 자신들이 보기에 부족하고 맘에 안 들면 게시판에 올려 의견을 내고 더 나아가 이성이 마비되면 구단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개념까지 이른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권리를 행사하고 싶을 때 이런 집단소동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팬들이 소동 와중에 “내가 쓴 돈이 얼마인데 나에게 이따위 대접을 하느냐”고 항변하거나 “이런 식이면 앞으로 N석 응원도 안 하고 N석을 아예 막아버릴 테니 각오하라”는 협박을 일삼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군중심리 영향

과도한 동일시 행동이 군중심리와 만나게 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아진다. 김용승 박사는 “서양은 동양에 비해 ‘나’라는 개념이 뚜렷하다. 그런데도 영국의 훌리건 등 삐뚤어진 집단행동이 나타난다.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 도덕적인 책임감이 사라지고 개인적으로 볼 때 지탄받을 일들이 묻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동양은 서양에 비해 집단의식이 더 강하다. 더 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흥분을 못 이겨 경찰차 위로 뛰어 오르고 선수단 버스를 걷어차는 과격한 행위를 하다가 연행된 팬들이 있었다.

김 박사는 “한일전 축구 때의 일사불란한 단체응원 등 집단행동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도 분명 있다. 그러나 일단 비이성적으로 변질되면 폭력과 욕설이 난무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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