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원 기자의 호기심천국] 타격왕은 쏘나타 몰고, 홈런왕은 그랜저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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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9일 07시 00분


타격왕 vs 홈런왕 누가 ‘연봉파워’ 더 셀까
프로야구 30년 분석해 보니…

대중은 홈런에 열광한다. ‘화끈한 한 방’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은 홈런왕은 구단에서도 인정받는다. 홈런왕이 연봉 협상에서 비교적 
순조롭게 원하는 대우를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983∼1985년 홈런왕을 3연패한 이만수(현 
SK 감독), 1997·1999·2001∼2003년 홈런왕을 차지한 삼성 이승엽, 1994년 홈런왕 김기태(현 LG 
감독).스포츠동아DB
대중은 홈런에 열광한다. ‘화끈한 한 방’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은 홈런왕은 구단에서도 인정받는다. 홈런왕이 연봉 협상에서 비교적 순조롭게 원하는 대우를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983∼1985년 홈런왕을 3연패한 이만수(현 SK 감독), 1997·1999·2001∼2003년 홈런왕을 차지한 삼성 이승엽, 1994년 홈런왕 김기태(현 LG 감독).스포츠동아DB
1940년대 후반 메이저리그를 풍미한 홈런타자 랠프 카이너는 “타격왕은 포드를 몰고, 홈런왕은 캐딜락을 몬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영원한 생명력을 얻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팬들은 홈런에 열광하고, 팬의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스포츠에서 홈런왕이 받는 관심은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다. 2003년 이승엽이 한 시즌 최다홈런기록에 도전할 때 관중석에 잠자리채가 등장한 사건이라던가, 2010년 이대호가 9연속경기홈런 신기록을 세웠을 때 공중파에서도 자막을 통해 긴급히 이 소식을 전한 것에서, 대중이 홈런에 열광하는 정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카이너의 말에 승복(?)한 것은 아니다. 12번 타격왕을 차지한 타이 콥이 특히 그랬다. 대중과 언론이 베이브 루스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참지 못한 콥은 1925년 5월 5일, 기자들에게 미리 “오늘은 홈런을 노리겠다”고 선언한 뒤 6타수 6안타 3홈런을 기록했다. 자신이 홈런을 ‘못 치는 것’이 아니라 ‘안 치는 것’이라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중적 인지도에서는 루스가 콥에 비해 우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출범한지 31년째를 맞이하는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어떨까. 역시 ‘타격왕은 포드를 몰고, 홈런왕이 캐딜락을 타는’ 상황일까. 지난 31년간 타격왕·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한 선수의 이듬해 연봉 자료를 모아봤다. 이를 중심으로 두 타이틀과 연봉에 얽힌 관계를 밝혀 보자.

○캐딜락 몰려 한 장효조, 까칠한 이미지 아쉬움


‘타격의 달인’이라 불리며 1983∼1987년의 5년간 4번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고 장효조 전 삼성 2군감독.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프로 진출을 1년 보류했던 그는 1983년 데뷔하자마자 타율 0.369, 18홈런, 22도루로 맹활약하며 타격왕을 차지했다. 같은 해 홈런왕을 차지한 팀 동료 이만수(현 SK 감독)의 연봉(2625만원)을 넘는 28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그런데 이듬해 타율 0.324로 장효조답지 않게 잠시 부진(?)한 사이 이만수가 타격 3관왕을 하며 연봉을 추월해버렸다(1985시즌 장효조 연봉 3080만원, 이만수 연봉 3281만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장효조는 1985년 타율 0.373으로 타격왕을 탈환하고 야수 중 최고 대우를 요구했다. 문제는 이만수도 1985년 22개의 홈런을 때리며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했다는 사실. 연봉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결국 둘의 연봉은 똑같이 4100만원으로 책정됐다.

1985년 삼성의 전후기 통합 우승을 이끌었던 김영덕 전 감독은 “장효조·이만수 뿐 아니라 마운드에 김시진·김일융이 있어 누가 감독을 했더라도 그 멤버로는 우승이었다. 그러다보니 원하는 연봉을 받기 위해선 자기 성적을 앞세우는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김 전 감독은 “아무래도 (장)효조가 선배다보니 조금이라도 더 주는 게 맞지 않았나 싶었는데…”라며 일본프로야구의 예를 들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했던 ‘미스터 자이언츠’ 나가시마 시게오의 연봉을 왕정치(오 사다하루)가 한번도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 하지만 홈런왕을 차지한 이만수의 대중적 인기를 구단이 인정했다는 말이다.

장효조는 이후 1986∼1987년 연달아 타격왕을 차지했으나 희망한 연봉을 받지 못했다. 1986년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연봉조정 신청을 한 장효조에 대해, 삼성은 1987년 연봉 협상 결렬을 선언하며 그 해 타격왕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는 충격적인 조치로 대응했다.

장효조는 생전에 연봉 협상 과정에서 마찰을 빚은 것은 후배들을 위해 총대를 멘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 과정에서 ‘까칠하다’, ‘자기밖에 모른다’는 말을 들은 것을 아쉬워했다. 후배들을 위해 타격왕도 캐딜락을 모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장효조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쌍방울, 홈런왕 김기태 위해 연봉상한제 무시


1994년, 쌍방울은 창단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홈런왕을 배출한다. 25홈런으로 홈런왕이 된 김기태 LG 감독이 그 주인공. 같은 해, 2년차 신예인 해태 이종범은 타율 0.393이라는 역대 두 번째의 고타율로 타격왕에 올랐다.

당시엔 구단들의 담합으로 선수연봉상한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연봉 5000만원 이상이거나 5000만원 이상이 되는 선수의 연봉은 전년도 대비 25%를 초과하여 인상할 수 없다’는 것이 담합의 내용이다. 해태는 이를 내세워 이종범의 연봉을 5000만원으로 올려주고 대신 보너스를 얹어주는 것으로 재계약 했다.

그런데 쌍방울은 홈런왕 김기태를 위해 구단들간의 담합까지 깼다. 김기태의 연봉을 1994시즌 대비 42% 인상해 6400만원으로 하고, 보너스도 800만원 얹어줬다. 이례적이고 파격적인 조치였다.

당시 쌍방울 한동화 감독은 “아무래도 사장·단장 등 프런트는 홈런왕을 배출하면 관중 동원이 되니까 신경써주는 게 있다. 관중들은 한 방 시원하게 치면 열광한다. 특히 김기태는 쌍방울에서 야구 혼자하다시피 했었는데 그런 내색을 안하고 공을 동료들에게 돌려서 선수단내에서 관계가 원만하고 구단에서 굉장히 예뻐했다”고 회고했다.

○이승엽, 이종범과의 연봉 대결 홈런으로 종결

2001년, 이승엽은 1997년·1999년에 이어 세 번째로 홈런왕에 등극했다. 이승엽의 연봉은 홈런왕이 되는 횟수에 비례해 1997시즌 연봉 6500만원에서 2002시즌 4억1000만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문제는 같은 해, 이종범이 주니치에서 KIA로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이종범은 이승엽 이상의 최고 대우를 요구했다. 이승엽과 이종범은 서로를 의식해 계약을 한동안 미룰 정도였다. 결국 이승엽이 4억1000만원에 재계약하자 KIA는 이종범에게 4억3000만원을 쥐어주며 자존심을 세워줬다. 이종범은 2002시즌 타율 0.293에 18홈런, 2003시즌 타율 0.315에 20홈런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2002∼2003년 연속으로 홈런왕을 차지하며 홈런왕 타이틀을 3연패한 이승엽과 더 이상 최고 연봉 대결을 펼칠 수는 없었다. 이승엽은 2003시즌 6억3000만원에 재계약하며 이종범의 연봉 4억5000만원을 멀리 따돌린 후, 2004시즌에는 일본으로 진출해 연봉 2억엔을 받았다.

○연봉 협상의 종결자는 역시 홈런왕


연봉 책정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반영된다. 구단의 재정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1985년 공동 홈런왕이 나왔지만 이만수와 김봉연의 연봉은 차이가 컸다. 기본적으로는 해태와 삼성의 구단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연차와 꾸준한 활약 여부도 중요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성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연봉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요소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연봉 협상의 종결자는 역시 홈런왕이다.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칙위원장은 “팀의 전력에 있어서 타격왕과 홈런왕의 비중은 거의 같다. 앞에서 세팅해줘야 홈런을 쳐도 여러 점이 들어오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종합적으로 보면 팀에 홈런왕이 있을 때 전력이 나아지지 않겠는가. 단기전에서는 홈런왕이 확실히 결정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항상 우승을 목표로 하는 구단에서는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만수 SK 감독은 “물론 예전에도 팬들이 호쾌한 홈런을 좋아했지만, 지금보다는 안타 치는 것을 선호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요즘은 홈런에 열광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카이너가 “타격왕은 포드를 몰고, 홈런왕은 캐딜락을 몬다”는 말을 남긴지 60여년. 한국프로야구에서도 홈런왕이 타격왕보다 연봉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onga.com 트위터 @united97in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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