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불평등해야 경마가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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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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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빠른 말엔 더 무거운 안장패드… ‘핸디캡 경마’의 세계

레이스를 끝낸 한 기수가 부담 중량에 포함되는 자신의 몸무게와 안장, 패드 등의 전체 무게가 경주에 나서기 전과 차이가 없는지 다시 한 번 검사를 받고 있다(위). 1000분의 1초 차로도 순위를 다투는 경마에서 부담 중량은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지난해 9월 25일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제15회 동아일보배 대상 경주. 한국마사회 제공·동아일보DB
레이스를 끝낸 한 기수가 부담 중량에 포함되는 자신의 몸무게와 안장, 패드 등의 전체 무게가 경주에 나서기 전과 차이가 없는지 다시 한 번 검사를 받고 있다(위). 1000분의 1초 차로도 순위를 다투는 경마에서 부담 중량은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다. 지난해 9월 25일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제15회 동아일보배 대상 경주. 한국마사회 제공·동아일보DB
“볼트 씨, 모래주머니 차고 뛰세요.”

누군가가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에게 다른 선수보다 너무 빠르니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단 채 대회에 나서라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 하지만 말 달리기 대회인 경마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경마에는 출주마의 경주 능력에 따라 부담 중량을 달리하는 핸디캡 경주가 있다. 경주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말이 더 무거운 무게를 등에 지고 뛰게 하는 것이다. 안장 밑에 까는 패드 무게를 달리해 부담 중량을 조절한다.

○ ‘불확실성의 기획자’ 핸디캐퍼

출주마들의 부담 중량을 어느 정도로 할지를 결정하는 건 핸디캐퍼의 몫이다. 어느 말이 우승할지를 예상하기 어렵도록 레이스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높이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한국마사회 윤성호 수석 핸디캐퍼(45)는 “경마의 생명은 박진감이다. 박진감 넘치는 경마를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이 핸디캐퍼다”라고 말했다.

경마에서는 왜 압도적으로 빠른 말이 있으면 안 될까. 이건 경마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오래전 말 주인들이 판돈을 걸고 내기를 하면서부터 경마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들 간의 실력 차가 너무 크면 내기가 성사되기 어렵다. 현대 경마에서도 마찬가지다. 출주마들의 우승 확률 편차를 최대한 줄여야 박진감이 있고 그래야 팬들의 관심이 높아져 베팅액도 늘어난다.

윤 수석은 “핸디캐퍼라면 경주에 나서는 말에 관한 거의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핸디캐퍼는 ‘경마 종합평론가’로도 불린다. 윤 수석은 “경주마의 능력을 평가할 때 고려해야 할 요소가 워낙 많아 기준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경주 기록뿐 아니라 보행 상태, 진료 경력, 치료 상태, 말들 간의 상대 전적, 최근 성적 등 모든 걸 꿰고 있어야 한다”는 게 윤 수석의 얘기다. 이렇다 보니 핸디캐퍼를 단시일에 양성하기는 힘들다. 철저히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교육 기간과 현장 실무 기간을 합쳐 최소 5년은 걸린다. 한국마사회가 핸디캐퍼의 인사이동을 가급적 자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부담 중량 1kg당 5m 차이

딱 부러지는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주관적 판단으로 부담 중량을 정하다 보니 핸디캐퍼들은 마주나 조교사들로부터 불평을 듣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 우리 말의 부담 중량이 이렇게 무겁냐”고 따진다는 것이다. 윤 수석은 “부담 중량 때문에 성적이 바닥을 치는 일은 없게 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어느 정도의 부담 중량이 적정한지를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1000분의 1초 차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게 경마이기 때문에 마주나 조교사들이 부담 중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통계적으로는 부담 중량이 1kg 늘어나면 2마신(약 5m) 차이가 나는 걸로 돼 있다.

윤 수석은 부담 중량이 상대적인 개념이란 걸 강조했다. 특정 경주마의 최근 성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무턱대고 부담 중량을 늘리지는 않는다. 레이스에 함께 출전하는 경쟁마들과의 능력을 상대적으로 비교해 부담 중량을 정한다는 것이다. 국내에는 11년 차 경력의 윤 수석을 포함해 과천 서울경마공원에 2명, 부산경남경마공원에 3명(영국인 1명 포함)의 핸디캐퍼가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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