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 그들을 말한다] 김성래 코치 “93년 1루수 MVP 내 인생 최고의 해”

  • Array
  • 입력 2011년 12월 17일 07시 00분


김성래 코치. 스포츠동아DB
김성래 코치. 스포츠동아DB
8. 삼성 김성래 수석코치

86년부터 3연속 황금장갑 ‘불세출의 스타 2루수’
89년 후배 강기웅 입단으로 2루수 자리 물러나
35세 은퇴 기로서 선택한 쌍방울행 후회는 없다


지난해 10월 26일 삼성은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에서 연수 중이던 김성래 코치의 영입을 발표했다. 1996년을 끝으로 고향팀을 떠났던 프랜차이즈 스타의 귀향은 이렇게 이뤄졌다. 대구·경북야구가 낳은 불세출의 2루수, 그러나 당시 나이 35세로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을 걷던 왕년의 스타, 구단의 은퇴 제의를 거부하고 서쪽으로 갔던 풍운아는 14년 만에 돌아올 수 있었다. 고향팀 복귀 첫 해 그는 타격코치를 맡아 경북고 3년 후배인 류중일 감독을 보좌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선수로 함께 삼성에 몸담았던 그 시절, 그토록 염원한 우승이었건만 신은 끝내 외면했었다. 10월 31일 SK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1-0으로 승리해 4승1패로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김 코치는 류 감독과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내년 시즌 그는 수석코치로 승격돼 류 감독과 한층 더 긴밀하게 호흡을 맞춰야 한다.

● 김성래는 MVP 1루수!

현역시절 김성래 코치는 스타 2루수였다. 1984년 삼성에 입단해 2000년 SK에서 은퇴할 때까지 홈런왕 2회, 타점왕 1회, 골든글러브 4회, 시즌 최우수선수(MVP) 1회에 빛나는 스타 플레이어였다. 1986∼1988년 3연속 2루수 부문 황금장갑의 주인이었던 그는 역대 최고의 2루수 가운데 한명이었으나 시즌 MVP를 수상한 1993 시즌에는 1루수로 뛰었다. 1988년 9월 6일 전주 해태전서 김성한과 부딛혀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을 입은 데다, 1989년 또 한명의 걸출한 2루수인 후배 강기웅(현 삼성 2군 코치)이 삼성에 입단하자 곧장 1루수로 자리를 옮겼던 것이다. 부상 때문에 22경기 출장에 그친 1996시즌 후 삼성에서 코치 연수를 제안하며 은퇴를 종용하자 11월 26일 자유계약선수로 쌍방울로 옮겼고, 2000년 출범한 SK의 창단 멤버로 한 시즌을 뛴 뒤 은퇴하고 SK 코치로 변신했다. 프로 17시즌 동안 통산 1277 경기에 출장해 타율 0.277, 147홈런, 595타점을 남겼다. 그 17년간 가장 화려했던 날은 언제였을까. “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93년이 제 전성기였죠.” 김 코치는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준 뒤 1루수로 황금장갑을 낀 1993년을 주저 없이 ‘선수 김성래’의 절정기로 꼽았다.

● 후회? 선택이었을 뿐!

김성래 코치는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며 쌍방울 이적 상황을 더듬었다. 그는 “96년 8월경 구단에서 코치를 제의했다. 처음에는 덤덤히 받아들였다. 10월경에는 해외연수비용 지원 의사까지 더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의견이 갈렸다. 나는 시애틀로 가고 싶었는데 구단은 LA 다저스를 추천했다. 다저스와 결연을 맺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나는 이왕이면 방망이를 잘 치는 팀에 가고 싶었다. 다저스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투수력이 강했던 팀이다. 그러던 차에 쌍방울에서 연락이 왔다. 구단에서도 조건 없이 풀어줬다. 그래서 88고속도로를 탔다”고 회고했다.

지역감정의 벽이 높던 시절, 과연 그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을까. 김 코치는 “어차피 프로라는 건 내가 일하는 직장을 찾아가는 것이다.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기량이 안 되면 데려가지도 않는다”며 인생을 살다보면 수없이 겪는 선택의 과정 중 하나였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곧 이어 그는 “삼성에서 그냥 풀어줬는데 사실 내가 잘 했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다행히 이적하고 그다지 신통치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고향팀에 대한 태생적 애정, 진실한 속내가 묻어나는 고백이다.

● 절실함이 부족하다!

타격코치로 1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며 고향팀 후배들에게 무슨 생각을 품게 됐을까. 김성래 코치는 “사실 작년 삼성에서 코치를 제안해오기 전 다른 팀(LG)에서 먼저 연락이 있었다. 또 오릭스에서 1년 더 코치 연수를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향팀인데다, 타자들만 좀더 잘 가르치면 우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삼성을 택했다. 그 과정에서 한달의 시간이 걸렸는데 구단도 내가 결정할 때까지 기다려줬다.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형우, 박석민, 채태인 등은 잠재력이 풍부한 타자들이다. 올해 최형우만 그 잠재력을 더 크게 꽃피웠지만 나머지 타자들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김 코치는 과거 자신의 선수시절과 비교해 아쉽게 느낀 부분도 잊지 않았다. 그는 “프로라면 열심히 하는 건 기본이다. 요즘 친구들은 꿈도 작고, 조그만 성과에 만족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김 코치는 현실을 탓하며 현실 자체를 부정하지만은 않는다. 그는 “당장 선수를 탓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대화를 통해 조금씩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화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 김성래 코치는?

▲ 생년월일 : 1961년 12월 3일
▲ 출신교 : 옥산초∼경운중∼경북고∼연세대
▲ 키·몸무게 : 185cm·87kg(우투우타)
▲ 프로선수 경력 : 1984년 삼성∼1997년 쌍방울∼2000년 SK
▲ 지도자 경력
- 2001년 SK 코치∼2010년
- 오릭스 연수∼2011년
- 삼성 타격코치(2012년 수석코치 승격)
▲ 수상 경력
- 1987년 홈런왕(22개)
- 1993년 시즌 MVP·홈런왕(28개)·타점왕(91개)
- 1986∼1988년 골든글러브(2루수)
- 1993년 골든글러브(1루수)
▲ 통산 성적 : 1277경기 3633타수 1008안타(타율 0.277) 147홈런 595타점 490득점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트위터 @jace2020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