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육상/김화성 전문기자의 눈]달리듯 걷는 세계 경보… ‘오리걸음’ 고집 한국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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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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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남자 20km 경보에서 6위를 한 김현섭. 한국 선수 중 가장 유력한 메달 후보였던 그가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한국은 노메달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대구=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8일 남자 20km 경보에서 6위를 한 김현섭. 한국 선수 중 가장 유력한 메달 후보였던 그가 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한국은 노메달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대구=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오리걸음은 이제 안 통한다. 세계 경보의 흐름이 무섭게 바뀌고 있다. ‘씰룩씰룩 오리걸음’이 사라지고, 대신 ‘단거리식 빠른 걸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8일 열린 남자경보 20km 레이스에서 상위권 랭커 대부분 ‘오리걸음’을 걷지 않았다. 경보 강국 러시아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 선수들도 ‘달리듯이’ 걸었다. 두 발이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지만 거의 달리기나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걷기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 러-中-日 선수들 새 걷기기술 활용


1시간19분56초로 금메달을 따낸 러시아의 발레리 보르친(25)이 대표적이었다. 역시 그는 ‘걷기 황제’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 금메달은 거저 따낸 게 아니었다. 그는 ‘달리듯이’ 걸었다. 스피드가 빨랐다. 일반인 눈으로 보면 달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두 발이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거나, 발이 땅에 닿을 때 무릎을 굽히지 않았다. 경고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심판들 눈으로 봐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 ‘씰룩씰룩’ 김현섭 폼은 좋지만

반면 김현섭(26)은 ‘우아하게’ 오리걸음으로 걸었다. 규칙에 충실했다. 발걸음이 부드럽고 리드미컬했다. 순위를 다투는 레이스가 아니라면 최고의 멋진 폼이었다. 당연히 경고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스피드가 나지 않았다. 파워가 부족했다. 결국 스피드는 강한 힘에서 나온다. 폼은 예쁘지만 실속이 없었다. 후반에 힘이 떨어지자 허리가 자꾸 구부러졌다. 중심축인 허리가 구부러지면 발걸음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 선수들은 보폭도 컸다. 31초 차로 2위를 차지한 블라디미르 카나이킨(26)도 보르친 못지않게 걷기 기술이 좋았다. 빠른 걸음에 파워가 넘쳤다. 세계 남자 경보의 양대 축인 중국 선수들도 발걸음이 빨랐다. 4위 왕전(20)은 어린 나이에 그런 수준의 걷기 기술을 가졌다는 게 놀라웠다.

○ 러시아 선수들 레이스 노련

초반 14km까지 1위를 질주했던 일본의 스즈키 유스케(23)는 2회 경고로 주눅 들어 8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그의 걷기 기술은 러시아 중국 선수들 못지않았다. 만약 중간 지점까지 무리에 섞여 걸었다면 경고 없이 후반에 스퍼트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러시아 선수들은 노련했다. 무리에 몸을 숨겨 심판들의 눈을 피했다가 중간 지점부터 치고 나왔다.

김현섭은 결승선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졌다. 습도 85%의 찜통 날씨 속에서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낸 것이다. 46명 중 6위는 내년 런던 올림픽 메달권도 노려볼 만한 성적이다. 하지만 남은 기간에 예민한 성격을 잘 다스려야 한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왜 신경성 위장염으로 쓰러졌는지 곰곰이 되새겨 봐야 한다. 오리걸음 방식을 바꿔 스피드를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이제 오리걸음은 세계무대에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김화성 전문 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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