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위원장 “선친의 감동 이제 알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7일 16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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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은 30년 시차를 두고 한국에 '올림픽 유치'라는 큰 선물을 안겼다. 경영인의 뚝심으로 국제 스포츠계의 표심을 모은 결과였다.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봉투를 열어 "쎄울(서울)"이라고 발표했다. 1988년 여름올림픽의 주인공이 서울로 결정된 순간 한국 대표단 90여명은 환호했다. 그 속에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1920~2002)가 있었다. 서울은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들었지만 52표를 얻어 일본 나고야(27표)에 역전승을 거뒀다.

그리고 30년 뒤. 고인의 장남은 또 한 번의 기적을 일궜다. 조양호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장(62·한진그룹 회장)은 6일 밤 남아공 더반 IOC 총회에서 활짝 웃었다. 자크 로게 위원장은 '평창 2018'이 적힌 메모를 펼쳐보였다. 평창이 삼수(三修)만에 위대한 승리를 거둔 순간이었다.

조 위원장의 승리는 감동의 드라마였다. 평창은 겨울올림픽 유치에 두 번 실패했다. 연속세 번 도전해서 성공한 나라는 없었다. 독일 뮌헨은 차기 IOC 위원장을 노리는 토마스 바흐 유치위원장이 IOC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조 위원장은 정중동(靜中動) 행보를 했다. 2009년 9월 평창 유치위 수장이 된 뒤 IOC 위원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총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에 64만km를 움직였다. 지구 16바퀴를 도는 거리였다. 그리고 IOC 총회에서 95표 가운데 63표를 얻었다. 뮌헨은 25표에 그쳤다.

조 위원장을 15일 오후 서울 서소문동 대한항공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선친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선친에 이어 올림픽 유치를 이끈 소감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날 미국 하버드대 경영자 과정을 연수 중이었다. 아버님은 바덴바덴에서 전화를 걸어와 '서울이 됐다'고 알려줬다. 선친의 뒤를 이어 국가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뛴 끝에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가슴이 뿌듯하다."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직후 일본 도쿄에 다녀왔는데….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에서 IOC 위원 20여명을 만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성공적인 2018년 겨울올림픽을 위해 유치위가 조직위까지 연속성을 갖고 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최근 일부에서 남북한 공동 개최 주장이 나왔는데 IOC측 반응은 어땠나.

"평창은 모든 경기장을 30분 내에 이동할 수 있는 콤팩트한 시설로 IOC 위원들의 지지를 얻었다. 뮌헨은 유치전 막판에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현지에서 평창의 약속을 보증한다고 강조해 승리를 이끌수 있었다. 그런데 일부에서 남북한 공동 개최 주장이 나오니 IOC 입장에선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유치위의 계획을 조직위가 충실히 지켜야 한다."

-평창이 경쟁 후보도시 독일 뮌헨을 꺾은 원동력은 무엇인가.

"정부와 기업, 전 국민의 지원 덕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평창 유치를 위해 더반에서 하루 두세 시간씩 영어 과외를 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건희 IOC 위원(삼성전자 회장)과 박용성 대한체육회장, 김진선 유치 특임대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유치를 호소했다. GS와 STX 고려제강 등 기업들도 큰 도움을 줬다."

-IOC 총회 최종 프레젠테이션은 감동의 드라마라는 극찬을 받았다.

"김연아는 필승 카드였다. 캐나다에서 오래 훈련해 영어가 익숙했지만 더반에서 나승연 대변인으로부터 발음과 손동작까지 철저하게 보완을 받았다. 문대성 IOC 위원은 대본을 수없이 읽고 통째로 외웠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역시 남과 다른 특별한 게 있다는 것을 느꼈다."

-평창이 얻은 63표는 역대 최다 득표인데….

"국제 컨설팅 전문가와 영상 디렉터를 영입해 시골 도시 평창을 세련되게 탈바꿈시켰다. 평창을 아시아 겨울 스포츠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슬로건 '새로운 지평'이 공감을 얻으면서 IOC 위원의 부동표를 끌어왔다. 특히 이 대통령은 IOC 위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했다. 연설에서 '나도 세계수영연맹 부회장을 맡았던 올림피아 패밀리'라며 정부의 지원을 약속하자 IOC 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 위원장은 기업 최고 경영자와 올림픽 유치위원장은 닮았다고 했다. 모든 사안에 대해국제적인 감각과 마케팅, 협상 능력을 갖고 고객(IOC 위원)의 요구에 맞춘 상품을 만드는 걸 총괄하는 자리라는 거다.

-최근 평창 겨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이 누가 될 것이냐를 놓고 말이 많다.

"조직위원장은 정부에서 결정할 일이다. 다만 IOC와의 긴밀한 협상과 스폰서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스포츠 전문가보다 전문 경영인이 필요합니다. 도쿄에서 만난 IOC 관계자들은 '조 위원장이 정책의 연속선상에서 조직위로 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에게 조직위원장을 맡고 싶지 않느냐고 재차 묻자 "개인적인 욕심보다 국가적인 신뢰를 지켜야 한다. 주위에서 인정해준다면 영광이다"라며 웃었다.

조 위원장은 7년 뒤 평창이 여름에는 골프, 겨울에는 스키와 스노보드를 즐기는 국제 관광도시가 돼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은 서울 올림픽으로 기점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중진국으로 올라섰다. 2018년 겨울올림픽은 선진국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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