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3수 성공 스토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7일 0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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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는 삼수 끝에 이룬 위대한 승리였다. 15년이라는 시간동안 겨울올림픽 유치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결과다.

평창의 도전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초대 민선 강원도지사였던 최각규 지사는 겨울올림픽 유치가 강원도 발전에 획기적 전기가 될 거라고 판단하고 내부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0년 10월 당시 김진선 강원도지사(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특임대사)는 2010년 겨울올림픽 유치 추진을 공식 선언했다.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때만 해도 평창은 낯선 도시였다. 일부 IOC 위원은 평창을 비슷한 발음 때문에 '평양'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평창은 2차 결선투표에서 캐나다 밴쿠버에 3표 차로 역전패했지만 세계 스포츠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평창은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2014년 대회의 재도전을 선언했다. 2005년 3월 한승수 전 국무총리를 2014년 대회 유치위원장으로 영입하고 철저한 준비에 들어갔다. 평창은 2007년 2월 실시된 IOC 평가단 현지 실사에서 러시아 소치,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7년 과테말라 IOC 총회에서도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찾아 IOC 위원들을 독대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평창은 2차 결선 투표에서 소치에 4표 차로 역전패했다.

하지만 평창은 겨울올림픽의 꿈을 포기할 순 없었다. 2007년 7월 강원도의회는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 결의안을 채택했다. 과거 2번의 도전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도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이건희 IOC 위원, 박용성 대한체육회장도 표심 잡기에 적극 나섰다. 조양호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장은 34회나 국제 행사에 참가하며 발로 뛰었다.

평창은 2018년 대회 슬로건으로 '새로운 지평'을 내세웠다. 평창을 동아시아 지역 겨울스포츠 활성화를 이끄는 허브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콤팩트한 경기장 시설을 대부분 완공해 IOC 평가단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럼에도 평창 유치위는 마지막까지 안심할 수 없다며 IOC 위원의 표심 잡기를 계속했다. 피겨 여왕 김연아와 문대성 IOC 위원은 IOC 총회 투표 직전까지 IOC 위원의 손을 잡고 지지를 호소했다. 운명의 7월 6일. 평창은 제123차 IOC 총회에서 뮌헨과 안시를 누르고 감격적인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온 국민의 염원으로 최대 겨울스포츠 이벤트를 이끌어낸 것이다.

더반=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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