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득점 2500점 이경수 "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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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4일 07시 00분


프로 원년·이듬해 MVP ‘왕년의 거포’
그땐 나이도 어리고 몸도 좋았는데
부상과 바꾼 대기록…뜻 모를 슬픔만

부상도 안고 가며 이겨내는게 프로
이제는 후배 다독여 우승 위해 최선

LIG의 경기에서 LIG 이경수가 수비벽을 두고 거센 공격을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LIG의 경기에서 LIG 이경수가 수비벽을 두고 거센 공격을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프로배구 원년인 2005년과 2005∼2006 V리그 2년 연속 득점왕. 2005∼2006, 2006∼2007년 V리그 올스타 MVP. 강만수-임도헌-하종화-신진식으로 이어져 내려온 실업배구 거포계보를 물려받아 프로출범 이후 V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로 활약해온 이경수(31·LIG손해보험)의 화려한 타이틀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전성기를 지나 프로 7년차에 접어든 이경수는 지난 1일 인천 도원 시립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과의 NH농협 2010∼2011 V리그 남자부 2라운드 경기에서 프로통산 공격득점 2500점을 돌파했다.

대한항공의 9연승을 저지한 의미 있는 경기였다. 이경수는 9득점을 하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배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의미 있는 기록 달성이지만 이경수는 “솔직히 의미를 크게 부여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심지어 “서글프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의외였다. 왜일까?

○기록 달성했지만 몸은 부상 투성이

이경수는 “작년에 무릎수술을 한 뒤 아직 정상 컨디션이 아니다. 예전만큼 공을 때리기가 어렵다. 다친 무릎이 착지 때나 점프할 때마다 신경 쓰인다. 예전만큼 각도가 크고, 타점 높은 공격을 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최고의 공격수라는 찬사와 관심은 후배들에게 물려준 지 오래다. 갖은 부상을 훈장처럼 몸에 달고,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최선책을 찾아 팀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있을 뿐이다.

화려한 기록 달성은 프로배구 선수로서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팀에 헌신해 온 대가였다. 기록달성 뒤 기쁨보다는 뜻 모를 서글픔이 먼저 찾아온 이유다. “그 때는 나이도 어리고 몸도 좋았다. 공격을 할 때 상대 블로킹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지금은 그 때처럼 하기엔 몸에 부상이 많아 힘들다”고 했다.

“그 만큼 많은 경기를 치렀고, 수 없이 많은 공격을 했다. 몸이 아프다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하다. 하지만 프로스포츠 선수 치고 부상 없는 선수는 없다. 그것을 스스로 안고 가면서 이겨내는 것이 프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감출 수 없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솔직히 자기 관리를 잘 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사실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워낙 팀내 비중이 높았고, 공을 많이 때릴 수밖에 없었다. 2005∼2006년에만 1100점이 넘는 득점을 했다. 그 덕분에 2500점 달성이라는 기록도 나올 수 있었겠지만 예전에 몸 관리를 더 신경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고 했다.

“아무리 젊고 몸 상태가 좋아도 한순간 방심하면 부상을 당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더 신경 써서 몸의 잔 근육을 많이 키워주면 부상을 덜 당할 수 있다. 스스로의 몸 상태를 잘 컨트롤해야 한다”며 후배들에 대한 따듯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후배들에 자리 내주고, 수비에 치중

2002년 LIG손해보험의 전신 LG화재에 입단해 어느새 팀 내 최고참이 된 이경수는 이제 최고의 공격수에서 팀의 진정한 살림꾼으로 거듭나고 있다. 득점은 줄었지만, 오픈 공격과 시간차 공격에서는 각각 57%와 80%의 성공률을 기록하며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리시브와 수비 부문에서도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예전에 비해 공격 횟수가 준 것이 사실이다. 이제 개인의 기록보다는 팀에 희생해야 할 때다. 내가 아니더라도 김요한과 페피치가 있다. 내가 나서서 공을 많이 때리기 보다는 수비에 비중을 두려고 한다”고 했다.

○살림꾼으로 활약하며 내 자리에서 최선

이제 이경수에게는 팀의 우승이 남아있는 가장 큰 목표다. 국가대표팀에서 주포로 활약하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2회 연속 우승을 이끌어냈지만 아직까지 팀 우승은 거두지 못했다.

“우리 팀은 무관의 제왕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팀 성적이 초라한데 개인의 성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팀이 잘 되어야 개인이 더 클 수 있다.우리 팀은 잘 될 때는 너무나 잘되는데 안 될 때는 경기 아닌 경기를 하곤 한다. 팀의 최고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과, 항상 후배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독려하는 일 뿐이다.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는 모두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승리를 이뤄냈다. 좋은 상승세를 탈 수 있는 계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심리적인 어려움만 잘 극복한다면 이번 시즌 우승도 가능하다”고 했다.

선산을 지키는 늙은 소나무 이경수의 활약을 앞으로 눈여겨보자.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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