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 감독 와이드인터뷰] “큰 대회 우승하면 은퇴하려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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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0일 07시 00분


“2∼3년 쉬면서 축구공부 계획했었는데
너무 일찍 아시아 제패 은퇴 계획 차질
자율·휴식 보장·개별미팅 팀워크 약발
다음시즌 계획? 일단은 무조건 쉴래요”

아부다비 크라운 프라자 호텔 자신의 방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
아부다비 크라운 프라자 호텔 자신의 방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신태용 감독.
성남 일화 신태용(40) 감독은 지도자가 되면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게 3가지 있다. ‘강제합숙’ ‘하루 두 탕(하루 두 번 훈련을 뜻하는 축구계 은어)’ ‘단체미팅’이다.

지난 2년 간 팀을 이끌며 이것만큼은 나름 잘 지켜왔다고 자부하고 있다.

부임 첫해 두 차례 준우승(K리그, FA컵), 2년 연속 6강 플레이오프 진출 그리고 올해 아시아 무대 정복이라는 눈부신 성과의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태용 감독이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아부다비에서 열린 2010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3∼4위전을 끝으로 2010시즌을 마쳤다.

그는 18일(한국시간) 선수단 숙소인 크라운프라자 호텔 자신의 방에서 약 30여 분에 걸쳐 시즌 소회를 밝혔다. 30분이라는 시간은 신 감독의 한 시즌을 담아내기에 너무 모자랐다. 10일 동안 아부다비에 머물며 신 감독과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때로는 잠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짬짬이 나눴던 대화를 총망라해 결산 인터뷰를 싣는다.

○선수들 덕분에 나는 난 놈

신태용 감독은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털어놨다.

“원래는 감독이 된 뒤 K리그나 FA컵과 같은 비중 있는 대회에서 우승하면 곧바로 은퇴할 생각 이었다”고 했다.

축구계를 완전히 떠나는 게 아니다. 2∼3년 정도 공백기를 갖고 축구공부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겠다는 말이다. 정점에 올라섰을 때 화려하게 은퇴하고 싶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나는 아직 젊다. 이곳저곳 많은 경험을 쌓고 더 많이 배워야 할 때라 생각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너무나 빨리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그것도 국내가 아니라 아시아를 제패했다. 본의 아니게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이런 뜻밖의 성과를 선수들의 공으로 돌렸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우승 직후 화제가 됐던 “나는 난 놈이다”는 말의 숨은 속뜻도 곁들였다. “시즌 전에는 우리 멤버로 챔스리그 예선만 통과해도 성공이라고 했죠. 말 그대로 기적을 이룬 것 같아요. 감독이 아무리 명장이어도 선수들이 안 뛰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선수들 덕분에 제가 우승 감독이 됐죠. 우리 선수들이 있어 전 난 놈이에요.”

○3無 원칙

단순히 좋은 선수들 덕이라고 하기엔 부임 2년 차에 그가 거둔 성적이 너무 눈부시다. 더구나 성남은 예전의 성남이 아니다. ‘레알 성남’은 옛말이다. 이제는 국가대표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스쿼드가 열악하다. 베스트 11의 절반 이상이 1∼2년 차 어린 선수들이다.

그래서 신태용 리더십의 비결이 화두다. 그는 이 질문을 받자 골똘히 생각하더니 “강제합숙과 하루 두 탕, 단체미팅”을 말했다.

강제합숙과 하루 두 탕은 성적이 좋지 않을 때 감독이 가장 쉽게 꺼내들 수 있는 카드다. “요즘 선수들은 예전과 다르다. 강제로 시키면 하루에 10번을 운동시켜도 절대 좋은 경기 안 한다. 의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선수시절 가장 싫어했던 부분이기에 잘 안다.

단체미팅도 최대한 지양한다. “단체미팅을 하면 아무래도 사람인지라 눈길 주는 선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선수들은 귀신 같이 알아채죠. 팀워크에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개별미팅을 선호한다. 표정이 좋지 않은 선수가 있다 싶으면 슬쩍 불러내 알밤도 먹이고 헤드록도 하며 장난을 친다. “이 자식, 베스트 11으로 못 뛰어서 그러는 거야?”

선수는 아니라고 펄쩍 뛰지만 감독이 그만큼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느낀다. 이른바 ‘신태용 식 스킨십’이다.

○사생활 보장

그는 평상시 오전 훈련을 선호한다.

오전 11시경 운동을 하면 점심식사 후에는 선수들의 자유시간이 보장된다. 반면 오후 3∼4시로 잡히면 여기에 얽매여 하루 종일 개인시간이 거의 없다.

“선수들도 영화도 보고 애인도 만나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어야죠. 그들이 축구하는 기계가 아니잖아요. 운동할 땐 열심히 해야겠지만 사생활도 있어야죠.” 이런 소신은 선수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다만, 성남의 훈련장 여건이 좋지 못해 오전 훈련을 자주 할 수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코치의 사유화도 절대 반대다. 코치를 감독의 운전기사처럼 부리고 어딜 가든 대동하는 일은 없다. 코치들에게 각각의 역할을 맡겨 주고 거기에 대해서만 책임을 문다.

○그냥 푹 쉬고 싶다

다음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감독을 하면서 없던 위장병도 생기고 믿지 않던 징크스도 믿게 됐다.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쉴래요. 가족들과 지인들과 따뜻한 나라에 가서 골프나 치면서 머리 좀 식히고 싶네요.” “골프 칠 때도 지는 것 싫어하느냐”고 묻자 정색한 채 “당연하다”고 했다.

신 감독은 싱글 골퍼다. 심심풀이 내기 골프에서도 패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는 천상 승부사다.

아부다비(UAE)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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