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를 떠나는 전설들 그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동아일보 입력 2010-09-25 03:00수정 2010-09-25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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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슈퍼스타들 줄줄이 은퇴 “서른 중반이나 사십대면 사회에서는 한창 때잖아요. 그런 시기에 젊음을 모두 바친 일을 그만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아무리 박수를 많이 받아도 ‘플레이어’로서 그라운드를 떠날 때 받는 작별 인사는 서운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해 선수생활을 마감한 정민철 한화 투수코치(38). 그는 오랜 세월을 함께한 선배 구대성(41)의 은퇴경기가 있던 3일 “대성이 형에게 고생했다는 말보다는 그냥 제2의 인생을 축복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민철은 1999년 한화의 첫 우승을 이끈 에이스였다. 프랜차이즈 스타로 그의 현역 시절 등번호 ‘23’은 은퇴와 함께 영구 결번이 됐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고 섭섭지 않은 예우를 받으며 선수생활을 마친 그에게도 은퇴는 낯설기만 했다. 누구보다 은퇴가 주는 미묘한 기분을 잘 알기에 구대성에게 차마 고생했다는 말은 하기 힘들었다.

○ 2010년 그라운드를 떠나는 스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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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슈퍼스타급 선수가 작별을 고했다. 구대성은 3일 삼성과의 대전경기에서 마지막 투구와 함께 은퇴식을 가졌다. 18년 동안 각종 타격 기록을 갈아 치우며 ‘푸른 피의 전설’이 된 양준혁(41·삼성)도 19일 대구 SK전에서 은퇴 경기를 치렀다.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1년 후 은퇴를 예고했던 SK 김재현(35)은 올해 한국시리즈를 마치고 현역에서 물러난다. 묘하게도 구대성은 양준혁 앞에서, 양준혁은 김재현 앞에서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1996년 입단 후 15년 동안 KIA(해태 시절 포함)에서만 뛰며 2루를 책임졌던 김종국(37)도 15일 두산과의 광주 경기에서 은퇴식을 했다. 같은 해 입단해 수년 동안 3할 톱타자로 활약한 이영우(37)도 18일 롯데와의 대전 홈경기에서 은퇴식을 통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2003, 2004년 두 해에 걸쳐 39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웠던 LG 박종호(36)는 26일 은퇴식을 앞두고 있다. 1992년부터 2008년까지 두산을 대표하는 스타였던 안경현(40·SK)도 최근 은퇴 의사를 밝혔다.

올해 그라운드를 떠나는 스타는 대부분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그라운드를 호령했다. 폭넓은 팬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들의 야구에는 남다른 끈기가 배어 있었고 철저한 프로의식과 책임감이 가득했다. 그들 때문에 웃고 울었던 팬들이 느끼는 아쉬움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올해 은퇴 스타들을 추억하는 팬들은 하나같이 “그의 플레이에는 요즘 선수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고 말한다.

○ 구단과 팬이 만드는 성숙한 은퇴 문화

2010년 은퇴하는 스타들이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은퇴 기념행사 덕분이다. 많은 스타가 은퇴 경기 또는 은퇴식을 치렀거나 계획 중이다.

매년 70여 명의 선수가 선수 유니폼을 벗지만 그동안 은퇴 행사를 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현재까지 국내 프로야구에서 은퇴 경기는 15번, 은퇴식은 36번에 불과하다. 은퇴 과정에서 선수와 구단의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적잖았기 때문. 은퇴를 압박하는 구단과 버티는 선수와의 갈등은 결국 선수로 하여금 떠밀려 은퇴를 하게 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게 만드는 등 좋지 않은 모양새로 이어졌다. 당연히 은퇴식을 치렀을 것 같은 슈퍼스타 중에는 변변한 행사 없이 그라운드를 떠난 선수가 꽤 많다.

올 시즌 은퇴를 택한 선수들의 속사정이 모두 편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선수들이 은퇴를 결심하는 과정이 원만하고 구단들도 정성스레 은퇴 행사를 준비하는 장면은 분명 나아진 모습이다.

여기에는 팬들의 몫도 컸다. 양준혁의 은퇴 경기 때는 하루 전부터 구장 주변에 텐트를 치는 팬들이 등장했다. 구대성의 은퇴 경기 때는 대전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이 목청껏 ‘대성불패’를 연호했다. 은퇴 선수를 예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김민재 한화 코치와 김동수 넥센 코치 등은 뒤늦게 은퇴식을 열기도 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양준혁
양준혁(삼성) “나는 야구하면서 한 번도 1루에 그냥 간 적이 없다. 아웃을 당하더라도 투수가 공을 한 개라도 더 던지게 해야 한다. 요즘 선수들은 자기만족에 잘 빠지는데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에게 하나라도 더 빼먹으려고 덤비는 게 진정한 프로다.”

구대성(한화) “후배들이 나에게 특별히 배울 건 없다. 자기 공에 자신감을 갖고 던지는 게 중요하다. 지금은 꼴찌이더라도 다시 1등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끈기를 갖고 해야 한다.”

김종국(KIA) “선수로서 최선을 다했고 결과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후회는 없다. 프로 선수라면 자신의 장기 하나는 확실하게 가져야 한다.”

이영우(한화) “우리 후배들이 야구를 즐기면서 하면 좋겠다. 악으로 깡으로 하는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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