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축구는 배움이다…축제다… 우리 ‘호모 사커스’가 되어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직사각형 안에서 벌이는 22명의 집단 군무(群舞)가 세상 사람을 웃게 하고, 울게 한다. 그들은 자불라니가 움직이는 궤적에 따라 모이고 흩어진다. 한 선수가 공을 몰고 달리면 상대방은 그 공을 빼앗으려고 달려든다. 몸싸움이 일어나고, 빈 곳에 떨어진 공을 차지하려고 힘찬 동작으로 전력 질주한다. 거칠다. 그래서 그들은 전사(戰士)라 불렸다.

하지만 순간 몸의 궤적을 바꾸면서 방향을 전환하고, 여기에 상대를 유유히 넘어서는 몸동작을 선보이며 공과 하나가 되는 장면을 연출한다. 관객에게 “아∼” 하는 탄성을 불러일으킬 만큼 우아한 동작으로 말이다. 무의식적으로 되뇐다. “아∼ 예술이다.”

우리 23명의 전사이자 예술가들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을 벌였다. 이 축구 예술가들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이라는 벅찬 드라마를 만들었다. 최초의 인류가 시작된 대륙,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에서의 첫 월드컵!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 부부젤라는 그렇게 울려 퍼졌다.

우리의 새로운 상대 우루과이 출신 언론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축구는 인류가 빚어낸 신성한 유희이며, 현대적 관습과 규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와 창의의 아름다운 몸놀림”이라고 했다. 실제로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 리오넬 메시의 발끝에서 스포츠가 예술로 승화된 일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이런 아름다운 몸놀림이다.

나는 축구를 정말 좋아한다. 중학교 3학년, 1학년 아이들과 주말마다 함께 축구를 하면서 ‘축구에서 삶을 배울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하곤 한다. 쉼 없이 움직이는 예술이 축구다. 90분 동안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유동하는 선수와 어디로 갈지 모르는 공은 나태와 직무유기, 방탕과 무지를 부끄럽게 만든다.

축구 경기를 관람할 때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치와 삶의 본질을 새삼 깨닫는다. 선수들은 대퇴 근육과 발목의 정강이뼈를 통해 경기장에서 역사를 일구지만, 그 역사는 언제나 도덕과 의무라는 가치의 경계 속에서 이뤄진다. 경기 규칙을 어기면 그 벌칙으로 프리킥이나 페널티킥을 받는다. 경고를 두 번 받으면 퇴장 당한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 규칙을 따르고 타인과 협력하는 법, 절제와 노력의 가치, 극기정신과 같은 미덕이 축구 안에 있다. 축구 경기에서 공은 늘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날아든다. 세상의 일도 그처럼 예측불허다. 축구장에서처럼 사람은 많은 우연이 소용돌이치는 세계에 발을 딛고 산다.

축구는 세계인의 놀이이자 축제다. 축구를 통해 사람들은 종교나 이데올로기는 잠시 제쳐두고 하나가 된다. 힘겨운 현실에 아파하는 아이들에게도 꿈과 희망이 된다. 이제 우리도 잠깐 얼굴을 내미는 데서 벗어나 축제의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즐기고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축구가 성공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이때 의미는 두 가지를 뜻한다. 하나는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고,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

사상 처음으로 이뤄낸 원정 16강의 의미를 잘 만들어야 할 때다. 축구가 배움이자 축제라는 의미를 선수들과 거리 응원에 나선 관객들이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축구를 진심으로 즐기고 만끽하는 새로운 존재 ‘호모 사커스’가 될 것이다.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주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