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가 엔트리탈락 후배들에게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일 20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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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은 꿈의 무대다. 축구선수라면 꼭 서고 싶은 무대다. 개인적으로 난 엄청난 행운아다. 선수로 네 번이나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고 코치로 한 차례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 중에는 실력은 충분했지만 불운한 선수도 많았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일이다. 대표팀 후배 강철이 출국하기 전날 발목을 다쳤다. 비행기 표까지 다 끊어 놓은 상태에서 불의의 사고로 월드컵 꿈을 접었으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철은 다시 일어서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월드컵 본선에는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프로에서 철벽 수비를 자랑하며 스타플레이어로 주목 받았고 지금은 지도자로서 후배들을 돌보고 있다.

친한 친구인 황선홍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치른 중국과 평가전에서 예기치 않은 부상을 당해 눈물을 흘려야 했다. 곁에서 지켜보면서 정말 안타까웠다. 하지만 황선홍은 4년 뒤 국민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와의 첫 경기 때 전반 26분 선제골을 넣으며 귀중한 1승을 선사했고 4강 신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1998년 함께 태극마크를 달았던 이동국의 월드컵 악연은 더 눈물겹다. 2002년에는 잘 뛰지 않는 선수라며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에 들지 못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눈에 들었으나 무릎 부상으로 본선 티켓을 놓쳤다. 선수로서 두 번이나 큰 시련을 맞았지만 이동국은 더 열심히 땀을 흘렸다. 결국 이동국은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들어 이번에 12년 만에 다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됐다.

이렇게 과거 얘기를 하는 이유는 1일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명이 발표되면서 눈물을 머금고 귀국 비행기에 올라야 하는 후배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서다. 부상과 엔트리 탈락으로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비행기에 오른 4명의 후배들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사실 지금은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실망하면 안 된다. 아직 젊고 미래가 창창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번 아픔은 더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강철, 황선홍, 이동국 등 선배들이 이미 보여줬다. 그들은 불운에 굴복하지 않고 멋진 행운을 만들어냈다. 월드컵은 4년 뒤 다시 온다. 그 때 더 멋진 모습으로 녹색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라. 너희는 할 수 있다. 팬들도 응원할 것이다.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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