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의 뉴스데이트]남아공 월드컵 두달 앞두고 만난 허정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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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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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지금은 그저 귀막고 갈길만 간다”

“아이고, 늦었습니다.”

약속 시간 오전 10시에서 30분쯤 지났을까. 허정무 월드컵 대표팀 감독(사진)이 대한축구협회 사무실로 들어섰다. 늦잠을 잤다고 했다. 요즘 국내외 경기를 보다 보면 밤낮이 바뀔 때가 많다는 것.

“하는 거 없이 보여도 하루하루가 그렇게 빨리 갈 수가 없어요. 마음도 좀 초조하죠. 시간은 빨리 가는데 우리가 뭔가 하고 있는 게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도 않고…. 본선 걱정 하다 보면 하루 금방 가요.”

선수들 경기를 보며 전화로 코치도 해준다고 했다.

“통화하면서 (박지성에게) 축하한다고 얘기했고요. ‘월드컵에 뛸 수 있는 힘은 조금 남겨 놓아라’라고 농담도 했어요.”

온 국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을 물어봤다. 정말로 우리가 ‘첫 원정 16강’에 갈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는 게 정답이에요. 예측은 벗어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예측대로라면 16강 진출은 너무 힘들죠. 분명한 것은 우리가 반드시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는 걸, 국민들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본 평가전은 어느 경기였을까.

“한 경기 갖고 얘기하는 건 의미가 없고, 우리 선수들이 매일 발전하고 있다는 거죠. 세대교체가 되면서 기존 선수들에게도 자극이 되고….”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가끔 여론의 조급함이 아쉬운 듯. 2월 동아시아선수권 중국전에서 졌을 때를 회상했다.

“진 것은 진 거지만 여론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 전에 저도 당해봤기 때문에. 수비가 나쁘다고 얘기하는데 수비가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그 뒤에 좋은 모습 보여줬고….”

7년 만에 대표팀 사령탑으로 돌아온 2007년. 초반에 무승부가 이어지자 ‘허무축구’라는 비판이 일었다.

“못하면 비판 받아야죠. 하지만 저에겐 월드컵 무대라는 목표가 있었고, 그러려면 세대교체가 필요했어요. 외국인 감독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들은 전혀 거기에 신경 안 썼단 말이에요. 순간 부진한 것 감수하고 큰 목표, 미래로 가야죠.”

선수-코칭스태프로 참가한
지난 세번 월드컵 땐 위축
이번엔 나도 즐기고 싶어


그가 발탁한 기성용 이청용 등 젊은 선수들은 대표팀의 기둥으로 성장했다. 허 감독은 다행이라며 “결과가 안 좋았다면 모든 화살은 나에게 돌아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성 이영표를 발탁했을 때도 욕을 먹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 얘기는 안 한다”고도 했다.

결전을 앞둔 요즘의 심정은 어떨까. “인터넷 댓글 안 보고 저녁 술자리 모임도 안 가요. 그저 지금은 귀 막고 갈 길만 간다는 생각뿐이죠.”

이번 월드컵 관전 포인트 가운데 하나는 허 감독과 아르헨티나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50)과의 재회. 허 감독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 감독을 밀착 마크하다가 ‘태권 축구’라는 별칭을 얻었다.

“사실 공 따라 가는 거였는데, 사진에 공은 안 나와서 (꼭 차는 것처럼) 보이게 됐어요. 공교롭게도 월드컵 무대에서 붙게 됐는데, 우리 선수들이 무력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선수(1986년 멕시코), 트레이너(1990년 이탈리아), 코치(1994년 미국)로 뛰었던 지난 세 번의 월드컵에 아쉬움이 많은 듯했다.

“저도 이번엔 즐기고 싶어요. 선수 땐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위축된 플레이를 하고 후회가 남았죠. 트레이너, 코치 때도 그랬어요. 우리 선수들에게도 얘기했어요. ‘책임은 내가 진다. 너희들은 나처럼 후회만 하는 사람 되지 말고,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최선 다했다면 최고로 좋겠다’고….”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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