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비탈길 4.2km 오르며 강훈… 멈추면 구를까봐 바퀴 계속 돌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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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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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겨울올림픽 첫 출전 휠체어컬링 대표팀

얼음판 땀방울로 녹이며
가혹했던 사고악몽 털어
“가족있기에…” 오늘도 파이팅

19일 춘천 의암빙상장에서 훈련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한 휠체어컬링 대표팀. 하얀 얼음판에 굵은 땀방울을 쏟은 이들의 눈빛에 결연함과 희망이 엿보인다. 이들은 사상 처음으로 3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장애인 겨울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노린다. 왼쪽부터 김학성 박길우 강미숙 김명진 조양현 씨. 사진 제공 대한장애인체육회
19일 춘천 의암빙상장에서 훈련을 마친 뒤 포즈를 취한 휠체어컬링 대표팀. 하얀 얼음판에 굵은 땀방울을 쏟은 이들의 눈빛에 결연함과 희망이 엿보인다. 이들은 사상 처음으로 3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장애인 겨울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노린다. 왼쪽부터 김학성 박길우 강미숙 김명진 조양현 씨. 사진 제공 대한장애인체육회
19일 강원 춘천 의암빙상장. 휠체어에 앉은 선수들이 익스텐더 큐라고 불리는 막대기로 20kg짜리 스톤을 밀어낸다.

자연스레 몸이 앞으로 쏠린다. 휠체어에서 떨어질 수도 있어 보였지만 표정에는 흔들림이 없다. 그들에겐 휠체어 뒤를 잡아주는 동료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은 국가대표이기 때문에. 김학성(42) 김명진(39) 조양현(43) 강미숙(42·여) 박길우 씨(43). 흰색 빙판 위에서 연방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훈련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은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이다. 이들은 밴쿠버 겨울올림픽 후 3월 12∼21일 열리는 장애인 겨울올림픽에 출전한다.

올림픽 출전은 이번이 처음. 컬링은 비장애 대표팀이 한 번도 올림픽에 나간 적이 없을 만큼 국내에선 미개척 분야다.

대표팀 5명 모두는 원주 연세드림팀 소속으로 2003년 팀 창설 이후 줄곧 함께했다. 김학성 조양현 씨는 지금의 팀을 만든 일등공신이다. 규정상 팀에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여자선수를 영입하기 위해 강미숙 씨 집 앞에서 1년 동안 기다리며 설득하기도 했다.

○가혹했던 사고, 혹독한 훈련으로 극복

강 씨가 문을 열기까지는 1년이 넘게 걸렸다. 그는 2000년 급성척수출혈로 하반신 마비가 왔다. 3년 동안 거의 매일 울었다. 그는 “병원에서 의사가 내 이름만 불러도 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강 씨의 동료들도 대부분 뜻밖의 사고에 오랜 시간 방황했다.

그들은 휠체어를 타고 빙상장을 밟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얼음판을 땀방울로 녹일 때마다 마음도 조금씩 열렸다. 어느새 혹독한 훈련도 마다하지 않게 됐다. 그들은 지난해 6∼10월 매주 화, 목요일마다 치악산 비탈길 4.2km를 휠체어로 올랐다. 멈추면 굴러떨어지기에 그들은 쉼 없이 바퀴를 돌려야만 했다. 또 매일 운동장 30바퀴를 돌았고 비가 오면 실내체육관을 110바퀴씩 달렸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그들은 끈끈한 동기애로 뭉쳤다. 전국 최강 팀으로 성장한 그들은 국가대표로 뽑혀 세계선수권에서 2007년 7위, 2008년 2위, 2009년 6위에 오르며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그들에게 올림픽은 새로운 목표다. 강 씨는 “유일한 가족인 76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딸이 올림픽 메달 따는 것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 못 따면 딸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족, 그리고 태극마크

강 씨는 얼마 전 어머니가 의자 위에 올라서 벽에 망치질을 하는 걸 봤다. 노모는 낑낑거리면서도 기어코 못 3개를 벽에 박더니 메달 10개를 걸어놓았다. 강 씨가 그동안 따낸 메달이었다. 강 씨뿐만 아니라 5명 모두에게 가족은 큰 버팀목이다. 사고로 시련에 빠진 이들을 붙잡아준 것도, 운동장에 나와 열띤 응원을 펼치는 것도 모두 가족이다.

박길우 씨는 아내에게서 ‘딸이 학교에서 아빠가 휠체어컬링 국가대표 선수라고 자랑하고 다닌다’는 말을 들었다. 박 씨는 뿌듯함과 함께 책임감을 느꼈다. 아빠로서, 국가대표로서.

조양현 씨는 “국제대회에 나가 숙소를 오갈 때 여행 온 한국 사람들이 태극마크가 찍힌 옷을 보고 국가대표냐며 다가와 반가워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들의 가슴속엔 가족이 있고 가슴 위엔 태극마크가 있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춘천=유재연 인턴기자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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