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희 기자가 간다] 아싸 브레이크 없는 질주본능 아뿔싸 브레이크 못잡고 엉덩방아

  • Array
  • 입력 2010년 1월 6일 07시 00분


인라인롤러만 신으면 전영희 기자도 100m 세계기록 보유자 우사인 볼트 부럽지 않다. 최고시속 60km에 이르는 빠른 속도가 주는 쾌감이 인라인롤러만의 짜릿한 매력이다.
인라인롤러만 신으면 전영희 기자도 100m 세계기록 보유자 우사인 볼트 부럽지 않다. 최고시속 60km에 이르는 빠른 속도가 주는 쾌감이 인라인롤러만의 짜릿한 매력이다.
처음에는 ‘로라’라는 이름을 가진, 장씨 성의 재미교포 음악가 이름인 줄만 알았다. 로라 장(롤러스케이트 장). 어머니와 선생님들은 “친하게 지내서는 안 될 곳”이라고 했다. 그곳은 항상 고고장과 한 묶음.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친구’와 ‘품행제로’ 등을 보자면, 소위 ‘껌 좀 씹었던’ 형·누나들이 떼를 지어 이곳으로 향했다.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고 싶던 질풍노도의 시절. 왜 그렇게 로라 장에 가보고 싶던지…. 하지만 언젠가부터 로라 장은 자취를 감췄고, 추억도 묻혔다. 2000년대를 맞으며 롤러스케이트의 변종이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30대 직장인은 옛 기억을 더듬으며, 10대 청소년들은 레저스포츠의 ‘아이콘’으로 인라인롤러스케이트(이하 인라인롤러)를 즐겼다. 이제 동호인만 수 백만 명. 한국은 지난해 9월, 중국 하이닝에서 열린 2009세계롤러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에서 사상 최초로 종합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롤러 강국이다.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정식종목으로 이름을 올린 인라인롤러. 한국의 간판선수인 남유종(23·안양시청)에게 인라인롤러를 사사(師事)하기 위해 경기도 안양으로 향했다.
○눈 덮인 롤러스케이트경기장, 비밀 장소로 이동


안양 비산동에 위치한 롤러스케이트경기장. 2006년 세계선수권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굵은 눈발에 국제규격의 경기장도 무용지물이었다. 빙판 길 때문에 자동차운전조차 쉽지 않은 상황. 폭이 더 좁은 바퀴의 인라인롤러 운행은 두말할 나위도 없어 보였다.

“어쩌죠?” 시작부터 한숨. 대한인라인롤러연맹 용백수(43) 교육이사는 “비밀 장소가 있다”며 차머리를 돌렸다. 도착한 곳은 평촌 중앙공원.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자, 이미 안양시청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박성일(41·안양시청) 감독은 “추운 날씨 때문에 12월에는 주로 이곳을 이용한다”고 했다. 동계에는 훈련시간의 50%% 가량을 웨이트트레이닝에 할애한다.

사이클(하루 100km)과 타이어 끌기, 계단 뛰기 등이 체력훈련의 기본 메뉴. 주차장에서는 스케이트를 신지 않은 상태에서 기본자세를 교정하는 이미테이션 훈련이 주를 이룬다.

○1시간 넘게 이미테이션 훈련만. “대체 스케이트는 언제 타나요?”

공기 저항을 줄인다는 타이즈를 입고, 스트레칭 시작. 남유종과 나란히 주차장 5바퀴를 돈 뒤, 기본자세 교육이 시작됐다. 양 발을 일자로 모으고, 발과 발 사이의 간격은 주먹 하나. 무릎을 발끝보다 앞으로 나오게 굽히고, 배는 대퇴부에 닿을 정도로 숙인다. 시선은 전방 2∼3m. 어딘가에서 많이 해본 자세였다. 군 시절의 ‘얼차려’ 내지 초등학교 때 짝꿍과 잡담하다 받던 벌. 하지만 남유종은 “이 자세가 안정성이 크다”고 했다. 단, 전제조건은 탄탄한 근력. 동계훈련 기간 동안 웨이트트레이닝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음은 무릎잡고 외발밀기. 기본자세에서 손으로 무릎을 잡고, 한 발씩 옆으로 민다. 무릎을 구부린 만큼만 밀어주고, 축이 되는 다리에 체중을 모두 싣는다. 지면의 반발력을 이용해 앞으로 이동하는 기술. 용백수 교육이사는 “뉴턴의 제3법칙(작용반작용)을 생각하라”고 했다. 점입가경, 한 쪽 다리에만 체중을 걸자, 몸이 기우뚱거렸다. 벌써 다리가 후들후들. “대체 스케이트는 언제 타는 거예요?”

훈련부터 꽈당 “엉덩이 불나네”
훈련부터 꽈당 “엉덩이 불나네”


1시간만에 스케이트 신고 폴짝
1시간만에 스케이트 신고 폴짝


서 있지도 못하고 또 꽈당! ㅠㅠ
서 있지도 못하고 또 꽈당! ㅠㅠ


코너링 맹연습 “지못미 어깨야”
코너링 맹연습 “지못미 어깨야”


제법 폼이…“선생님 고마워요”
제법 폼이…“선생님 고마워요”


○날개달린 신발…우사인 볼트도 안 부러워….

드디어 인라인롤러를 신을 차례. 모양부터 선수들이 쓰는 레이싱용과는 달랐다. 초심자용은 발목을 보호할 수 있도록 스케이트의 목이 길고, 바퀴도 작다. 스피드보다는 안전에 초점을 맞춘 것.

인라인롤러의 최고시속은 60km가 넘는다. 2009베를린세계육상선수권 남자100m결승에서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가 세계기록(9초58)을 세울 당시 평균시속은 37.58km. 하지만 인라인롤러 300m단거리에서는 평균시속이 40km 이상이다. 인라인롤러에도 육상과 마찬가지로 마라톤(42.195km)이 있다.

육상마라톤이 2시간 이상 소요되는데 비해 인라인롤러마라톤은 1시간 만에 승부가 갈린다. 인라인롤러만 있으면, 날개 달린 샌들을 신은 ‘제우스의 전령’ 헤르메스가 되는 셈.

하지만, 스피드와 부상의 위험은 동전의 양면이다. 남유종은 “훈련 도중 넘어져서, 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헬멧과 팔꿈치, 무릎 보호대는 필수. 만약 실전레이스라면, 넘어진 뒤 뒤따라오는 선수와 2차 추돌의 가능성까지 있다. 헬멧 끈을 더 단단히 조였다.

○‘손발이 따로 노는’ 원 푸시…더블 푸시는 언감생심

인라인롤러 잘 타기의 첫 단추는 걷기. 남유종은 “처음에는 바퀴의 구동력 때문에 똑바로 걷는 것조차 힘들다”고 했다. 균형감각을 잘 다듬어야, 인라인롤러를 옆으로 미는 동작을 습득하는 것도 용이하다.

발을 V자로 두고, 손으로 무릎을 앞쪽으로 당기면, 스케이트가 전진한다. 자동차로 말하자면 시동이 걸린 것. 이제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차례다. 오른 발을 3시 방향으로 밀었다가 제자리로 가져오고, 곧이어 왼발을 9시로 방향으로 밀었다가 제자리로 가져온다. 가속의 시작. 이 일련의 과정이 원 푸시 기술이다. 오른발을 밀 때는 오른 손을 올리고, 왼팔을 뒤로 젖혀 속도를 높인다.

따로따로 배운 동작에 연속성을 부여하다보니, 머릿속이 뒤죽박죽. “그 쪽 팔 말고, 반대 팔 들어야죠!” 남유종의 답답한 표정. 꼭, 제식훈련 할 때 마다 손과 다리의 방향이 따로 놀던 ‘고문관’이 됐다.

선수들은, 한 쪽 발을 인 에지(In-edge)로 민 뒤, 다시 원위치로 가져올 때 아웃에지를 사용하는 ‘더블 푸시’ 기술을 쓴다. 더블 푸시 기술의 창시자는 채드 헤드릭(32·미국). 헤드릭은 세계선수권에서 50개의 금메달을 목에 건 뒤 2002년 홀연히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전환했다. 얼음판도 더블 푸시 기술로 평정. 결국, 헤드릭은 2006토리노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5000m에서 정상에 올랐다.

○‘훈련하면 안되는 게 어디에 있어요? 다 되지.’

최고급 ‘더블 푸시’ 기술을 배우려다 단번에 포기하고, 원 푸시로 주차장을 활주. 질주본능을 드러내다보니, 어느덧 저 멀리서 주차장 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브레이크를 잡을 차례. ‘아뿔싸!’ 멈추는 방법을 배우지 않았다. 꽈당!

초심자용 인라인롤러의 오른쪽 뒤꿈치에는 힐(Heel) 브레이크가 있다. 주행 중, 오른쪽 스케이트의 앞부분을 살짝 들면, 브레이크와 지면이 마찰을 일으켜 멈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레이싱용 스케이트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남유종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그냥 반대방향으로 ‘휙’ 돌아버렸다. 가장 폼 나는 기술이었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오늘 그것만 가르쳐주세요.” 또 다시 꽈당꽈당. 무릎이 저려올 때쯤이 되자 어설프게 급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었다. “그것 봐요.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니까!” 당사자보다 더 기뻐하는 남유종. 안양시청 박성일 감독은 “더블 푸시 같은 선진고급기술을 국내에 이식하기 위해 7∼8년 간 노력해 왔다”고 했다. 혁신에 대한 꿈. 그것이 한국롤러스케이트가 ‘로라 장’의 편견을 뚫고, 세계정상에 이른 비결이었다.

안양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