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령이 거닐었을 신선봉엔 멋진 상고대가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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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4일 10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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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령산(1,026m)과 주흘산(1,079m)은 같은 산군에 속한다. 백두대간의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능선은 동에서 서로 대미-포암-조령-백화로 이어진다. 이 주릉상의 포암산과 조령산 사이에 마역봉(또는 마패봉 922m)이 있다. 신선봉은 마패봉 서북쪽 가까이에 있는 봉우리다. 신선봉에서 남쪽을 향해 바라보면 왼쪽이 주흘산이고 오른쪽이 조령산이다. 마패봉과 조령산 사이가 바로 새재인 제3관문이다.

영남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영(嶺)의 남쪽 지방을 뜻하는데 영(嶺)이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 사이의 죽령,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사이의 조령, 이화령 등을 말한다.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 영남대로의 길목인 문경 새재(조령 鳥嶺)가 그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옛날 경상도에서 한양을 가기위해 백두대간을 넘던 고갯길은 포암산 아래 하늘재였다. 그 후 문경 새재를 새로이 뚫어 지금의 고속도로라 할 수 있는 영남대로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새도 넘기 힘든다 해서 조령(鳥嶺)이라는 유래가 있고 새로 만들었다 하여 새재라고도 한다는데 나는 후자의 유래가 더 타당하다고 본다.

새재는 워낙 유명하여 문화, 역사적으로 많은 명소가 있고 전설도 많다. 조선 태종 때 처음으로 새재 길을 뚫고 난 후, 이 일대에 호랑이가 출몰하여 피해가 많았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는 호랑이를 산신령과 동격시하는 유래가 있는데, 당시 호랑이 피해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 ‘문경새재산신령’(호랑이) 체포명령을 내렸다. 한양에서 특파된 관리는 새재 산신사에 제문을 지어 불사르고 혜국사에 머물면서 기다렸다. 그날 밤 천지가 진동하는 호랑이 울부짖음이 있었고 아침에 산신사에 올라가보니 앞마당에 엄청난 호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호랑이 가죽을 벗겨 태종대왕께 호피를 바쳤고 그 후 호랑이 출몰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 사건이 있은 이후 전진공(문경전씨 2세조)이 혜국사에 유숙하여 있는데 그의 꿈에 새재 산신령이 현몽하기를 '나는 새재 산신령인데 나라에 득죄하고 아직 면죄를 못 받았으니 그대가 나를 위해 나라에 상소하여 죄를 면해 달라'고 청했다. 전진공은 즉시 새재 산신령에 관한 사죄상소를 올렸더니 태종께서 친히 산신령의 죄를 사하였다 한다. 나는 신선봉을 오르면서 ‘혹시 그때 산신령(호랑이)이 이곳 신선봉 주변에서 놀지 않았을까? 그래서 신선봉이라 하는가?’ 하고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주흘산과 신선봉은 대간마루에서는 약간 빗겨나 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이 부근 산군의 주산은 역시 주흘산이다. 조령산도 주흘산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를 보면 조령산이라는 산 이름이 없고 그 일대를 ‘주흘산’으로 표시하고 있을 정도다.

컬럼비아 필드테스터의 이번 산행 코스는 조령산 휴양림이 있는 고사리(古沙里)를 중심으로 신선봉에 먼저 올라 연어봉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당초에는 연어봉-신선봉-마패봉-제3관문을 한 바퀴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눈이 살짝 내렸고 일행도 많아 코스를 변경했다. 문경새재(3관문)는 동쪽으로 하늘재, 남쪽으로 이화령이 있는 가운데 위치한다.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드는 최대의 관문이자 군사 요충지인 이곳은 임진왜란 때에는 신립 장군이 활동한 곳이기도 한다.

마패봉은 마패를 걸어두었다 해서 붙여진 것이고 마역봉은 그 봉우리 아래(3관문)에서 말을 갈아탔다고 하여 그리 부른다고 하는데 같은 봉우리다. 다만, 일부 등산지도에 마폐봉으로 잘못 표기되었으니 착오 없도록.. 신선봉까지 올라가 정상에서 조망한다. 동남쪽으로 주흘산 연봉이 늘어섰고, 동쪽으로는 포암산 너머 대미산(1,115m)이 살짝 보인다. 남쪽으로는 멀리 백화산(1,064m)이 있을 것이나 조령산(1,026m)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신선봉에서 연어봉으로 하산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지점에서 신선봉을 뒤돌아보니 정상부 북사면의 나뭇가지에 핀 상고대가 눈에 확 들어온다. 마치 차갑고 맑은 수정으로 만든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다. 그 깨끗함이 너무 아름다워 어린애처럼 소리를 지르며 사진을 찍으라고 권했다. 내려가면서 계속 뒤돌아봐진다. 내 추억의 메모리에 확실하게 저장해두고 싶다.

상고대는 눈이 나무에 붙은 것이 아니라 공기 중의 수분이 얼면서 나무에 달라붙은 것이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새벽, 서리가 나무에 수평으로 붙은 것인데 바람이 부는 쪽에 달라붙는다. 언젠가 지리산에서는 달라붙은 상고대 길이가 5Cm까지 되는 것도 보았다. 오늘의 상고대는 2-3Cm 정도인데 정상부의 북사면 참나무에 멋있게 붙어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눈이 바람에 날려 붙은 눈꽃하고 혼돈하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확연히 다르다. 상고대는 칼날처럼 얇게 붙고, 눈꽃은 가지 위에 살포시 쌓이거나 강풍에 날린 눈이 나무 기둥이나 가지에 떡이 되어 붙는다.

신선봉에서 방아다리바위까지 제법 급경사가 있는 바윗길이 군데군데 있어서 조심조심 등산로를 내려섰다. 방아다리바위에서 병풍바위-뾰족봉능선과 연어봉능선이 갈린다. 아무 생각 없이 등산로를 따라가면 병풍바위로 가게 되나, 우리는 오른쪽으로 가는 연어봉 능선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연어봉은 고사리에서 볼 때는 병풍바위에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연어봉 자체의 암봉도 좋고 연어봉 정상에 있는 물고기 형상의 바위도 볼 겸해서 연어봉으로 갔다.

바람 없는 날씨에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인 연어봉 바위에 벌렁 누워본다. 겨울 바위의 차가움은 전혀 못 느끼겠다. 함께 따라 눕는 대원도 있다. 연어봉에서의 하산은 50분 정도 소요된다. 작은 계곡을 건너 뾰족봉능선이 내리뻗어 끝나는 지점을 돌아서면 고사리가 보인다.

오늘도 마지막 하산길은 7살 병화 군과 함께 했다. 운악산, 구봉대산에 이어 세 번째다. 운악산 절벽을 함께 내려선 이후 병화군도 나에게 경계심이 없어졌고, 나 역시 어린 아이가 힘든 산행을 즐겁게 해내는 것이 기특하기만 하다. 아무리 부모를 따라왔다고는 하지만 아이들은 힘들고 괴로우면 솔직하게 싫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인데 병화는 제 나름으로 산행을 즐기는 듯하다. 그리고 산행 때마다 하산할 때면 슬그머니 내 옆에 있게 되고, 나 역시 혹시 병화와 함께 하산하면 내가 조금 도와줄 일이 있을 텐데.. 하고 기대하게 되는데 그런 내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오늘도 우리는 마지막 하산 길을 나란히 둘이서만 걸었다. 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아름다웠던 산행의 추억을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길 소망했다.

마운틴월드 이규태 master@mountainworld.net



▲마운틴월드 이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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