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다이어리] 프런트 징크스도 ‘용호상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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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1일 07시 30분


KIA새옷 무장·SK 속옷까지 그대로

4차전을 앞두고 문학에서 만난 KIA 홍보팀은 속옷과 양말에 넥타이는 물론, 상의와 바지, 재킷까지 모두 새 것이었습니다. KIA 홍보팀은 전날 원정유니폼 상의 색깔에 맞춰 빨간색 넥타이로 함께 멋을 내 주위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팀원 전체가 하루 만에 미련 없이 넥타이를 풀어버렸습니다. 반대로 SK 박철호 홍보팀장은 겉옷은 물론 전날과 와이셔츠까지 똑같았습니다. 설마 속옷도? 슬쩍 물어보니 조용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눈치 채셨습니까? 징크스(Jinx) 때문입니다. 징크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불길한 징조를 뜻하지만 프로야구에서는 긍정적인 자기최면으로 더 많이 쓰이더군요.

타순부터 배트, 배팅장갑, 유니폼, 구장, 날씨, 심지어 저녁메뉴까지 야구장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이 감독과 선수들의 징크스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 감독도 아닌 프런트 직원들이 징크스 때문에 왜 속옷까지 갈아입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경기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옷에다 스스로 만든 징크스입니다. 이유는 팀이 이기고 우승하는데 아주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한 간절함입니다.

내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SK 김재현은 “돌이켜보면 프로야구 선수는 최고의 직업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 말 그대로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은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야구의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프로야구 프런트는 반대로 ‘가장 고된’ 직업중 하나입니다. 평범한 직장인 같지만 선수단과 똑같이 움직이며 한 시즌을 치릅니다. 늦은 퇴근에 잦은 출장, 그리고 팀 성적에 따른 스트레스까지 고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팀이 좋은 성적을 내면 보너스를 받는 경우가 있지만 선수들처럼 억대 연봉자가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자신보다 선수가 첫 번째입니다. 선수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다 감내합니다.

4차전 직전 KIA 한 프런트는 선수들이 평소 마시던 음료수를 광주에서 직접 공수해 덕아웃 냉장고에 채우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른 직원은 선수들이 앉을 의자에 묻은 물기를 정성스럽게 닦아냈습니다. 그 누구보다 야구를 깊이 사랑하는 그들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리고 그 묵묵한 희생에 힘껏 박수를 보냅니다.

문학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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