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LG 이대형 ‘대도 넘버원’… 내가 뛰는 이유

  • 입력 2009년 9월 9일 0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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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볼을 쳤다 하면, 무조건 1루에서 세이프였다. 베이스를 밟자마자 주저 없이 뛸 준비를 했다. 다음 타자에게 초구가 날아가는 순간 스타트를 끊으면, 또 당연히 2루에서 세이프. 뛸 걸 알면서도 막지 못한 상대 배터리는 처음엔 씩씩거리다가 이내 체념했다. 고교 3년 동안 도루 실패는 단 1회. 각종 대회에서 도루상만 10개 가까이 받았다. LG 이대형(26)의 학창시절 얘기다. 이대형은 2일 목동 히어로즈전에서 올 시즌 50호 도루를 성공시켰다. 2007년 53개, 2008년 63개에 이은 3년 연속 50도루. 이대형의 우상이었던 이종범(KIA)도 해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기록이다. 스스로도 “이대형 하면 도루가 떠오른다는 점에서 내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기록”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1루 도착까지 3초76… 타고난 빠른발

어릴 때부터 발 하나는 최고로 빨랐다. 동네에서 야구를 하다보면 따라올 자가 없었다. 체육선생님도 운동을 해보라고 부추겼다. 그래서 밤낮으로 아버지를 졸랐다. 충남 대천에 살던 이대형 가족은 광주로 이사하면서 결국 야구부가 있는 서림초등학교 근처에 집을 얻었다.

그렇게 이대형의 야구가 시작됐다. 이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는 선택이다. 스카우트 출신인 이효봉 엑스포츠 해설위원은 “광주일고 시절, 이대형이 배트에 공을 맞히는 순간부터 1루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3초76에 주파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4초벽을 넘은 선수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고 귀띔했다. 중학생 이대형은 1학년 때부터 선배들을 제치고 경기에 나섰다. 키는 작아도 번트를 대면 백발백중 출루가 가능해서였다. 키가 훌쩍 크기 시작한 고교 시절에는 더 펄펄 날았다. 지역 예선에서는 한 경기에 도루 5개를 성공시킨 적도 있다. 역사는 어쩌면 그 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프로 첫해 다친 어깨… 시련의 시작

큰 키에 긴 다리, 하얀 피부에 송아지 같은 눈. LG 관계자들은 “우리 팀 여성 팬의 80%% 이상이 이대형의 팬”이라고 농담하기도 한다. 하지만 겉모습만으로 그를 ‘꽃미남’에 ‘순둥이’로 단정 지어선 안 된다. 그도 남몰래 혹독한 시련을 딛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촉망받는 신인이던 2003년, 50경기에 연속출장 중이던 이대형은 2루 슬라이딩을 하다 오른쪽 어깨에 벼락같은 통증을 느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일단 참고 외야까지 달려 나갔다. 하지만 팔 전체가 부들부들 떨렸다. 위로 들어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교체돼 덕아웃으로 돌아왔더니 손이 퉁퉁 부어서 글러브가 벗겨지지도 않았다. 결국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어깨와 팔을 잇는 근육이 찢어져 탈골이 됐다고 했다. “일단 시즌은 마쳐야겠다는 생각에 짧게 재활하고 다시 경기에 투입됐어요. 하지만 너무 아파서 슬라이딩을 할 수가 없었어요.” 시즌이 끝난 후 결국 수술을 받았다. 이후 2년간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두번의 수술… ‘나만의 슬라이딩 법’ 터득

2005시즌 막바지, 최종 20경기에 주전으로 나섰다. 그런데 겨울 마무리 훈련 때 또 어깨 근육이 떨어져 나갔다. “한번 탈골되면 완치란 게 없대요. 아무리 잘 고정시켜도 방심하면 또 찢어지는 거예요.” 그래도 재수술은 싫었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전지훈련에서도 슬라이딩 한 번을 안 하면서 몸을 아꼈다. 2006년에 또다시 헤드퍼스트슬라이딩을 하다 어깨가 탈골된 건, 그래서 더 큰 충격이었다. 도저히 참고 뛸 수가 없어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두 번째 고통은 처음보다 더 컸다. 그러나 4개월 재활 후에는 곧바로 잠실로 달려가야 했다. 김재박 감독이 새로 부임했기 때문이다. 신임 감독의 눈에 들고 나는 건 한순간. 차마 “재활을 더 하고 싶다”는 말을 못 했다. 하지만 그게 전화위복이 됐다. 아픈 어깨를 조심하면서 슬라이딩을 하던 몇 년 동안 나름의 노하우를 터득한 것이다.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제 몸이 알고 있는, ‘안 다치는 슬라이딩 법’이 있어요. 그게 몸에 배니까 타석에서나 수비에서도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이대형은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도루하면 이대형, 그 꿈을 향해 뛴다

이제 그는 스피드, 슬라이딩, 센스의 삼박자를 다 갖춘 ‘도루의 장인’이 됐다. 게다가 상대 투수의 투구폼을 읽는 재능도 뛰어나다. 그렇다고 마냥 칭찬만 받는 건 아니다. 일부 비뚤어진 팬들은 그를 곱지 않게 본다. “팀 성적은 하위권인데 혼자 도루하면서 개인성적에만 신경 쓴다”고. 이대형은 이를 일축했다. “나가서 열심히 뛰는 것도 결국 팀을 위한 거라고 생각해요. 난 어떻게든 한 베이스라도 더 가려는 건데, 그걸 비난한다면 할 말은 없어요. 팀이 4강에 진출하는 건 저 역시 입단 때부터 늘 가슴에 품고 있는 소망이거든요.” 사실 도루 한 번에 얼마나 많은 체력이 소모되고 위험이 따르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다. 바깥쪽으로 휘어버린 이대형의 엄지손가락은 이제 잘 구부려지지도 않는다. 스스로 “손 여기저기에 장애가 있다”고 표현할 정도. 손목 통증은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더 심해져서 타격 부진으로 이어지고, 온 몸에는 ‘영광의 상처’로 불리는 멍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경기에 못 나가겠다고 투정부려 본 적 없는 이대형이다.

어느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건, 모든 걸 조금씩 두루 잘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이대형은 지금 ‘도루’의 상징이 되기 위한 5부 능선을 넘었다. 그리고 다시 스파이크 끈을 고쳐 맸다. 어깨가 아파도, 무릎이 깨져도, 손가락을 다쳐도, 계속 묵묵히 달릴 것이다. 훗날 기다리고 있을 더 큰 영광을 위해.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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