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어머니 위해 다시 뛰고 싶었는데…”

  • 입력 2009년 7월 7일 02시 56분


5년전 프로농구 최단신화제 이항범씨 2군 드래프트 ‘쓴잔’

잔뜩 찌푸린 하늘에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졌다. 오후 3시의 청계천은 한산했다. 그는 새 일자리를 알아보느라 늦었다고 했다.

이항범 씨(29·사진)와 6일 청계천변에 걸터앉아 얘기를 나눴다. 그와 첫 통화를 한 것은 사흘 전이었다. 프로농구 2군 드래프트가 끝나고 전화를 걸었는데, 본의 아니게 기자가 탈락 소식을 전한 모양새가 됐다. “혹시나 했는데 (기자의) 조심스러운 어투를 듣고 안 됐구나 싶었죠.”

벌써 5년이 흘렀다. 2004년 2월 프로농구 드래프트에서 이 씨는 단번에 ‘스타’가 됐다. 168cm의 프로농구 최단신, 길거리 농구를 거친 고졸 출신. 게다가 아버지는 탤런트 이병철 씨(60)였다.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에 팬들까지 생겼다. 하지만 그는 석 달 만에 KCC 유니폼을 벗었다. “갑작스레 주변의 관심이 생기고 기대치가 높아져 부담스러웠어요. 제가 뭘 보여줘야 했는데 자신이 없었지요.”

결과는 냉혹했다. 그는 드래프트에 선발된 뒤 계약을 거부했기 때문에 5년 동안 선수로 뛸 수 없었다. 사실상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하는 조치였다. 하지만 그는 기다렸다. 스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 때문이었다.

이 씨의 어머니 팽인자 씨(55)는 2003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졌다. 6년 동안 투병 중인 어머니는 간단한 대화조차 힘들다. 이 씨는 매일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건다. “항범인데요. 잘 계세요? 제가 주말에 가서 목욕시켜 드릴게요.” 아들의 목소리를 들어도 어머니는 대답이 없다. 통화는 채 1분을 넘기지 못한다.

“제가 중고교에서 농구부 주장을 맡았을 때 어머니가 음식도 싸오시고 뒷바라지를 하셨어요. 어머니와 함께한 농구에 대한 추억이 많죠. 제가 선수가 되면 어머니가 기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그는 엷게 웃었다. “좀 마음을 추스르고 싶은데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빨리 일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농구 관련 일을 해야죠.” 비가 내렸고, 이 씨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헤어지며 “이제는 밝은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어요. 기대하세요”라며 웃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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