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뉴스데이트]이충희 고려대 감독 재도전

  • 입력 2009년 7월 2일 17시 00분


◆김현수의 뉴스데이트

(박제균 앵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7월 2일 동아 뉴스 스테이션입니다.

김현수 앵커가 화제의 인물을 만나는 '김현수의 뉴스데이트' 첫 시간입니다. 1982년 아시안게임 우승의 주역, 농구대잔치 통산 4000득점, 한 경기 최고 67득점. 이충희 고려대 감독은 그래서 '슛도사'로 불렸습니다.

(김현수 앵커) 아직 지도자의 운은 따르질 못했지만, 스타선수는 감독으로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최근 고려대 감독에 재도전한 이충희 감독을 만났습니다.

=====================================

'슛 도사'. 선수 생활은 전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도자의 길을 쉽지 않았습니다.

2007년, 7년 만에 프로농구 감독을 맡았지만, 7개월 만에 성적 부진으로 퇴진해야 했습니다.

(인터뷰) 이충희 감독 / 고려대

"운 때가 좀 안 맞았다는 거예요 운 때가. 나는 선수를 많이 가르치라고 타고난 거 같아요. 많이 가르치라고, 편하게 있지 말라는 거 같아요."

이충희 감독의 도전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재학시절 49연승 신화를 이룬 고려대가 그 출발점입니다.

상황은 녹록치 않습니다. 전임 감독과 학부모 간의 갈등으로 6월초 선수단이 해산되기까지 했습니다.

이 때문에 고려대 농구팀은 지난달 시작한 전국 대학농구 1차 연맹전에도 불참했습니다.

(인터뷰) "처음에 (감독직 제의를 듣고) 굉장히 좀 당황했어요, 그게 왜 하필 나야. 한편으로는, 내가 항상 (팀이) 어려운 시기에만 맡았기 때문에 이게 또 나에게 운명이고 숙명이고 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9월에 열리는 정기 고연전이 승부처. 이 감독의 전략은 뜻밖에도 인화입니다.

(인터뷰) "선수를 어떻게 가르쳐야 되고, 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화, 선수가 상당히 인화 단결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고, 학생이니까 인성적인 것도 많이 가르쳐야 되거든요…"

사실 이 감독은 타고난 농구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학창시절 키는 170cm 내외. 농구를 포기하려 할 때, 아버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될 때가 바로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슛 1000개를 넣을 때까지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저는 목적을 크게 가졌어요. 그리고 농구를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나. 결국은 농구는 상대에다 골을 넣는 거야. 근데 키가 작아. 당연히 못 넣게 할 거야. 그럼 어떻게? 그럼 멀리서 던져야 한다. 남들이 10개를 던져서 5개를 넣는다고 하면 나는 더 많이…"

남보다 많은 설움과 좌절을 이겨냈다는 이충희 감독.

스타 선수였던 감독은 못하는 선수를 헤아리지 못한다는 말은 편견이라고 강조합니다.

(인터뷰) "스타감독은 명장이 될 수 없다? 이건 절대 반대에요. 그냥 스타가 된 건 아니야…"

농구가 징글맞을 때도 됐지만, 그의 농구 인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인터뷰) "공부하고 마찬가지로 농구도 배우면 배울수록, 깊이를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려워요. 사실 내가 다시 태어나도 농구를 하고 싶고…"

동아일보 김현수 입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