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까지 1.5km… 살려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 박영석 원정대 에베레스트 등정 뒷얘기
“자일 모자라 다시 내려갈 수도 없다”
배수진 치고 정상 오른뒤 다른 길 하산
이틀 걸려 베이스캠프 무사히 귀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64m)는 22일 짙은 안개로 가득 찼다. 궂은 날씨에 간간이 눈발마저 날렸지만 원정대원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루트 개척을 위해 15일 베이스캠프를 떠난 원정대는 1주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20일 정상 등정의 감격을 맛본 원정대는 이틀을 걸어 내려와 겨우 휴식다운 휴식을 갖게 된 것이다.

대원들의 얼굴은 연탄처럼 검게 그을렸다. 그동안 씻지도 못하고 강렬한 자외선에 그대로 노출됐기 때문. 하지만 에베레스트에 최초로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고 내려온 대원들의 얼굴은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지난달 왼쪽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던 박영석 대장(46·골드윈코리아 이사)은 아직도 절룩거렸다. 하지만 정상 등정에 무사 귀환까지 이뤄낸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번 원정은 많은 분들의 걱정과 응원으로 이뤄낸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맙다, 고맙다’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네요.”

박 대장은 이날 오전 8시 30분 캠프2(6500m)를 출발해 오후 5시가 돼서야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4시간이면 충분할 거리였지만 8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만큼 그는 파김치가 돼 있었다.

원정대는 20일 0시 20분 캠프5(8400m)를 출발해 14시간 20분 만인 오후 3시(한국 시간 6시 15분)에 정상에 섰다. 대부분의 원정대가 오전에 정상 등정에 성공하지만 오후 늦게까지 사투를 벌인 것이다.

박 대장을 통해 들은 원정 뒷얘기는 더 치열했다. 8600m 높이에서 만난 첫 번째 절벽에 올라섰을 때 박 대장은 안도감보다 불안감이 앞섰다. 정상까지의 거리는 약 1.5km. 하지만 남은 자일은 700m에 불과했다.

“이제 자일이 충분치 않다. 내려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 살려면 정상을 넘어 다른 길(남동릉 루트)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는 자일을 깔면서 전진할 수 없는 상황. 자일을 묶은 서로의 몸에 의지해 나아가야 한다. 배수의 진을 친 원정대는 ‘살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서릉은 쉽지 않았다.

“정오가 넘었는데 다시 정상 부근에서 두 번째 절벽을 만났을 때는 정말 아득했어요. 저도 대원들도 지쳤는데 정말 ‘이 절벽을 넘지 못하면 모두 죽겠구나’라고 생각했지요.”

박 대장의 걱정을 덜어준 것은 신동민 대원(35)이었다. 박 대장조차 ‘괴물’이라고 인정한 신 대원은 선봉에 서서 루트를 개척하며 대원들을 이끌었다. 결국 원정대는 마지막 고비를 넘겼고 정상을 밟았다. 박 대장을 비롯해 진재창 부대장(43), 신 대원, 강기석 대원(31) 등 4명이 코리안 신루트를 작성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원정대는 23일 베이스캠프에서 철수해 28일 귀국할 예정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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