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애프터] 참가자 80명, 기막힌 사연도 가지가지

  • 입력 2009년 5월 13일 08시 54분


1년이면, 야구선수출신 고등학교·대학교 졸업생이 무려 800여명.

이 중 프로팀의 지명을 받는 선수는 60여명에 불과하다. 이들 앞에서 웬만한 취업경쟁은 배부른 소리.

산 입에 거미줄 치라는 법은 없었다. 자동차 판매부터 야구코치까지. 밥벌이는 했다.

하지만 야구를 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트라이아웃 참가자 80여명에게는 80여 편의 시나리오가 숨쉬고 있었다.

주창훈(28·前KIA)씨는 1군 무대까지 밟았던 KIA의 차세대 1루수였다.

하지만 2005년, FA 장성호(32)가 KIA에 잔류하고, 2007년 최희섭(30)이 KIA에 입단하면서 설 자리가 없어졌다.

결국 군 복무 이후 방출됐다. 타격이론의 대가 박영길(68) 실업야구연맹 회장은 “팔꿈치를 붙이고 배트를 돌리라”며 애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프리배팅에서 장쾌한 홈런타구가 수차례 나왔다.

서경상(31·성균관대 졸업)씨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국노’ 칭호를 받은 정현욱(31·삼성)과 장안초-건대부중-동대문상고(현 청원고) 동기다.

둘은 10년 가까이 호흡을 맞춘 배터리. 고등학교 때까지 포수로서 주가를 날리던 서씨였지만 잦은 부상 때문에 공이 두려워졌다.

결국 선수생활을 접을 위기에 처했다. 그를 만류한 사람은 강한 어깨를 눈여겨 본 윤석환(두산) 코치.

결국 투수로 변신한 서씨는 대학4학년, 4승2패로 준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서씨는 “(정)현욱이는 어릴 적부터 연습벌레로 유명했고, 유난스러울 정도로 몸 관리를 했다”고 회상했다.

정현욱은 공을 던지는 오른손에 해가 될까봐 물건을 만질 때도 철저히 왼손만을 사용했다.

서 씨는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정)현욱이가 있었을 것”이라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화보]전영희 기자가 간다… 실업야구 트라이 아웃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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