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병에 머리가 띵… 약 따로없어 고생만

  • 입력 2009년 4월 14일 22시 59분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은 고랍셉(해발 5140m)이다. 마을이라고 하지만 서너 개의 롯지(네팔식 산장)가 모여 있는 게 전부다. 4000m까지는 듬성듬성 침엽수도 보였지만 이 곳은 온통 얼음과 바위뿐인 황무지다.

5000m 이상에서는 사람이 오랫동안 머물기 힘들다. 기압이 떨어져 혈액 속 헤모글로빈의 산소포화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몸 속 산소가 부족해 각종 이상 증세가 나타나는 탓이다. 두통, 구토, 현기증에 심하면 폐부종과 뇌부종 등으로 생명에 위협까지 준다. 흔히 이런 증세를 고산병(高山病)이라고 부른다. 고산병은 보통 2500m부터 시작된다.

박영석 대장(46·골드윈코리아 이사)은 "고산병은 예방이 최고"라면서 본격적인 등반 전에 각종 예방책을 알려줬다. 하지만 그게 더 곤혹스러웠다. 우선 씻는 게 금지됐다.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면 체열이 빠져나가 고산병이 오기 쉽단다. 기자는 지난달 31일부터 머리를 감지 못했고, 잘 때는 두툼한 털모자를 써야 했다. 많이 먹으면 위에 산소가 쏠려 과식도 금지됐다. 술과 담배도 당연히 멀리해야 했다. 몸 안팎이 근질근질했다. 고산병에 걸리면 약이 따로 없다. 무조건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박영석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는 10일 고랍셉에 도착했다. 베이스캠프(5364m)를 코앞에 둔 마지막 마을이다. 원정대원들의 표정은 밝았지만 기자는 그렇지 못했다. 고산병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점심부터 머리가 띵하더니 오후가 되자 머리가 깨질 듯했다. 누가 머리를 쥐어짜는 듯했고 작은 바늘이 머리 속에 촘촘히 박힌 듯했다. "아예 더 높은 곳에 올라갔다 오라"는 박 대장의 주문에 인근 칼라파타르(5550m)까지 올라갔다 내려왔지만 저녁 내내 끙끙 앓았다.

11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면서 두통은 좀 가셨다. 하지만 머리는 여전히 아팠고 식욕은 떨어졌다. 박 대장은 "고산병은 대원들이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적"이라고 말했다. 베테랑 산악인도 고산 적응은 매번 새로 해야 한다. 예방약도 치료약도 변변치 않은 고소 적응은 고산 등반의 가장 큰 숙제다. 이번 원정대도 베이스캠프를 시작해 캠프1(6100m)~캠프2(6500m)~캠프3(7300m)~캠프4(8000m)~캠프5(8400m)를 수시로 오간다. 고소 적응과 함께 루트 개척에 나서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한 달 가까이 이어진 뒤 5월 중순 정상(8850m) 공격에 나선다. 산소 탱크는 8000m가 넘는 캠프4에서부터 사용할 예정이다.

원정대는 12일 새벽 캠프1 구축을 위해 나섰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다.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설맹(雪盲)이 걱정될 정도로 눈이 부셨다. 박 대장은 "정상 공격을 할 때도 오늘처럼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베레스트=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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