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제압하는 한국의 발야구

  • 입력 2009년 3월 19일 16시 24분


세상은 우리가 스몰볼을 한다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정보다. 제 1회 WBC를 통해 보여준 한국의 스몰볼은 그 당시의 대표팀 구성에 맞게 짜인 가장 이상적이었던 작전체계였을 뿐이다. 당시 수준이 세계적인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던 우리 대표팀은 대단한 공격력보다는 짜임새 있는 선수 구성으로 첫 대회를 준비했고, 홈런포보다는 작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 그때의 선수 구성으로 국가대표를 짠대도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이종범, 김재걸, 김민재, 김종국 하는 식의 라인업은 분명 공격을 위주로 했다고 보긴 힘든 구성이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국 야구의 성격은 매우 달라졌다. 우익수 이진영을 빼곤 전부 바뀐 라인업에서 각 포지션의 각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력에서 모두 국내 최정상급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얼굴로 포진됐다. 한마디로 따로 공격형, 수비형을 나눌 필요가 없는 조합이다.

이젠 메이저리그에서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4번 타자는 얼마 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로도 뽑히지 않았던 선수였고, 일본전에 톱타자로 나와 상대 배터리를 한 순간에 무기력하게 망가뜨린 외야수는 항상 후보로 국제대회를 시작해왔다. 대수비 요원으로 교체된 가냘픈 선수는 좌측 담장 밖으로 타구를 날려버렸다.

한국야구는 더 이상 스몰볼도 아니고 그렇다고 빅볼도 아니다. 굳이 한국 야구를 작은 야구와 큰 야구로 나누려고 하는 시도는 전 세계의 사람을 A형, B형, O형, 혹은 AB형으로 4등분하려는 것만큼 애처롭고 단순한 일이다. 우리는 스몰도 빅도 모두 가졌으니까.

우리의 야구는 작전야구, 그 중에서도 달리는 야구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1회 선두타자 안타에 이어 초구 도루, 진루타, 내야 땅볼로 득점. 뭐 이런 식의 야구는 맞은 느낌도 없이 상대방을 후려치는 발야구의 진수였다. 1회에만 우리 팀의 4점 중 3점이 나왔듯이 일본은 이미 이 작전 성공으로 이미 절반은 넋을 잃은 상태가 됐다.

멕시코전에서 보여준 더블스틸은 상대의 추격하고자 하는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린 명장면이었다. 서양의 야구란 그런 것이다. 겨우 2점 앞서고 있는 7회 무사 1,2루에 4번 타자가 타석에 있는데 더블스틸을 한다는 것 자체는 상상조차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2루에 나가있던 고영민은 투수가 공을 던지기 한참 전에 이미 스타트를 끊었다. 만일 상대가 작전을 간파했다면 이건 절호의 득점 기회를 날려버린 최악의 본 헤드 플레이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주자의 도루 따위는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을 때 그 때 했던 그 작전이었기에 정확하게 들어맞았고, 4-2로 시작한 7회를 우리는 8-2로 마칠 수 있었다.

흔히들 ‘발에는 슬럼프가 없다’는 말을 한다. 타격감, 제구력은 컨디션에 따라 좌우되지만 스피드야 부상을 당하지 않는 한 떨어질 게 없다. 그러나 과도한 스피드 욕심은 홈런만 의식하고 연신 큰 스윙을 해대는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된 4번 타자의 방망이만큼이나 무모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도쿄 일본전에서 나타난 김현수-김태균의 주루 플레이가 그 결정적인 사례였다.

결국엔 타이밍 싸움이다. 빠른 판단, 빠른 주력만 있으면 발야구는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사실상 현 라인업에서는 4번 김태균과 포수 박경완을 제외하고는 다 발야구가 되는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단력으로만 한정해서 본다면 이들도 능력이 있다.

이미 프로리그를 통해 체득한 발야구 전쟁이 지금의 한국 야구를 두 단계 이상 끌어 올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리키 핸더슨이나 후쿠모토 유타카가 온다고 해도 뛸 타이밍을 찾는데 있어서는 우리가 한 수 위다.

여기에 추가로 상대팀의 송구나 릴레이 능력까지 머릿속에 넣어둔다면 우리는 세기의 발야구 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투수가 조금만 높게 던져도 담장을 넘겨버리고, 전 타석에 홈런 쳤다고 수비가 깊이 들어가면 기습번트대고, 때릴지 번트 댈지 타자에 집중하면 도루하고, 이 정도면 3루에서 멈추겠지 하면 홈으로 들어와 버리는 한국은 욕심쟁이다.

2년 연속 리그 정상과 그 아랫자리를 차지한 SK의 김성근, 두산의 김경문. 두 감독이 시작한 발야구는 이제 한국 야구의 트랜드가 됐다. 이번 WBC가 끝나면 세계 야구가 우리 야구를 벤치마킹하려고 달려들지나 않을지 모를 일이다.

엠엘비파크-유재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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