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매일 1000번 스윙…이젠, 몸이 폼을 기억하죠”

  • 입력 2008년 9월 30일 08시 44분


2005년 8월31일. 신일고 3학년 김현수의 아버지 김진경(58) 씨와 어머니 이복자(56) 씨는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거문고홀을 찾았다. 2006년 프로야구 신인 2차지명회의가 열리는 현장. 김 씨와 이 씨는 아들의 지명을 확신하고 모인 선수 가족들 중 한 명이었다. 아들 현수는 청소년 국가대표를 거친 재목이었으니 프로 지명은 떼놓은 당상이라 여겼다. 부모는 그 기념비적인 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그리고 4라운드, 5라운드. 시간은 흘러갔다. 아들의 이름은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

○프로지명을 받지 못한 ‘청소년 국가대표’

같은 날 같은 시간. 김현수는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가 열리는 인천 시내의 한 PC방에 앉아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대부분 고3이었던 청소년대표팀 동료들과 함께였다. 인터넷으로 실시간 업데이트 되는 2차지명 결과. 끝없이 ‘새로 고침’을 눌렀다. 같이 있던 동기들의 이름이 하나둘씩 올라왔다. 김현수는 그냥 5라운드 안에만 들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다섯바퀴를 돌아 40명이 호명될 때까지 그의 이름만 나오지 않았다. 6라운드가 시작된 순간, 김현수는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지명돼도 안 갈래. 가기 싫어.”

그래도 부모는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뒤늦게라도 우리 아들을 알아봐주겠지.’ 떨리는 가슴으로 기다렸다. 9라운드가 끝났지만 결과는 허탕.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온 부모는, 더 속상해 할 아들을 생각하며 주저앉았다.

○야구가 싫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

당시 대표팀에서 지명받지 못한 선수는 안산공고 2학년이던 김광현(SK) 밖에 없었다. 김현수는 그 때를 돌이키며 “야구가 싫었던 유일한 순간”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온 가족이 함께 꿨던 프로야구선수의 꿈. 초등학교 3학년 때 김현수가 “야구선수가 되겠다”고 하자 부모는 두말 않고 승낙했다. 그 이후 한번도 야구가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온 몸과 마음을 쏟았다. 그런데 돌아온 결과는 ‘미지명 선수’였다. ‘발이 느려서 안 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누군가는 ‘신일고 출신들은 게을러서 안 된다’고도 했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속상했어요.” 김현수는 아직도 이 얘기를 할 때마다 얼굴이 붉어진다.

며칠 후. 몇몇 구단에서 전화가 왔다. “신고선수로 입단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 테스트도 필요 없다고 했다. 그게 오히려 더 상처였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그 때 지명을 해주지….’ 차라리 대학에 가버릴까 싶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도 상황이 달라질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프로에 입단하고 싶다는 희망이 자존심을 앞섰다. “오라는 구단이 있을 때 가자고 마음먹었어요.” 결심은 어려웠지만 입단할 팀을 선택하는 건 쉬웠다. 원래 고향팀 두산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 후 3년이 흘렀다. 이제 한국 프로야구에서 김현수를 모르면 ‘간첩’이다. 올 시즌 타격(0.359)과 최다안타(164개) 1위를 달리고 있는 김현수는 지난달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땄다. 김현수의 좌우명은 ‘하면 된다’다.

○하루 1000개 스윙이 만들어낸 ‘신화’

‘신고선수 신화’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신화’라는 드라마틱한 표현으로 포장하기엔 노력의 중량이 너무 무거웠다. 김현수는 입단과 동시에 하루에 1000개씩 스윙을 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2군 숙소에서 합숙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방망이를 돌렸다. 2006년에 2군 담당이었던 김광림 타격코치는 김현수가 지칠 때마다 곁에서 고삐를 당겨준 은사였다. “원래 갖다 맞히는 데 자신이 있었다”는 김현수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배트스피드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고, 몸의 중심부터 다리 위치까지 가장 잘 맞는 타격폼을 찾는 데 공을 들였다. 김현수는 “점점 하나씩 안정돼 가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김 코치는 김현수가 1군에 붙박이로 투입된 지난해부터 함께 1군에 올라왔다. 이만하면 운명적인 사제관계다.

김 코치가 말하는 김현수의 장점은 “타석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낙천적이고 무던한 성격 덕분에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법이 없다. 쉽게 폼이 흐트러지지도 않는다. 김현수는 “워낙 스윙을 많이 해서 이미 몸이 그 자세를 기억하는 것 같다”고 했다. 타고난 체력도 물론 뒷받침됐다. 두산 김경문 감독은 “좋은 몸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게다가 김현수는 야구밖에 모른다. TV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다.

○목표는? ‘최다 연속경기 출장 기록’

스무살 어린 나이에 ‘최고 타자’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니 목표도 거창할 듯 하다. 그런데 바라는 건 단 하나. 오래오래 선수생활을 하는 것이란다. 누군가는 김현수가 “삼성 양준혁이 보유한 통산 최다안타 기록을 깰 것”이라고도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장효조 삼성 스카우트가 남긴 통산 최고 타율을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김현수에게는 이 모든 게 둘째 문제다. 진짜 목표는 최태원 KIA 코치가 보유하고 있는 1014연속경기 출장 기록. “내가 야구를 꾸준히 잘 해왔을 뿐만 아니라 부상 없이 건강하게 해왔다는 증거잖아요.”

김현수는 지난해 8월19일 대전 한화전부터 시즌 최종전까지 총 25경기에 연속 출장했다. 올해는 총 121경기를 치른 29일 현재까지 개근 중이다. 이제 겨우 10분의 1 정도를 통과한 셈이다. 그래도 김현수는 “매 시즌 전 경기 출장을 목표로 하다보면 언젠가 끝이 올 것”이라고 했다. 꼭 이 기록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물었다. “야구장에 많이 나갈 수 있는 게 저에겐 유일한 행복이거든요.” 괜한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실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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