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배의 열린스포츠] 3代가 함께 즐긴 야구장…“여기가 천국이네요”

  • 입력 2008년 9월 17일 08시 14분


추석 전날인 지난 토요일 대구구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만원이었다. 통로까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추석을 지내기 위해 고향을 찾은 필자는 가족들과 함께 구장을 찾았다. 특히 아버지와는 35년 만에 함께 찾은 야구장이었다. 게다가 야구를 처음 가르쳐준 누님가족과 사촌형님가족 그리고 아이들까지 3대가 동행했으니, 그 감회는 남달랐다. 부산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은 롯데에 ‘광분’했으며, 어른들은 고향팀을 차분히 응원했다. ‘롯데교 신자’인 아이들의 응원을 보면서, 불현듯 30년전 고교야구를 보며 흥분하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부자지간에 응원하는 팀이 다르다는 것은 앞으로의 여정이 험난함을 예고하고 있지만, 아무려면 어떠리. 야구를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대부분의 필자세대 남자, 특히 무뚝뚝하고 폐쇄적인 경상도 남자라면 더 하겠지만 아버지와의 대화와 소통은 왠지 어색하고 불친절하다. 아이들과의 관계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때로는 야구가 정말 고맙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야구가 소통의 도구가 되고 있으니까. 야구가 오늘날까지 미국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핵심요소는 ‘가족소통’에의 기여이다. 야구는 룰이 복잡한 편이기 때문에 혼자 익히는 경우보다는 누군가에 의해 영향을 받아 빠지게 되는 대표적인 스포츠이다. 어린 시절 주말리틀리그에 참여하고, 아버지와 캐치볼한 추억은 미국어린이에게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뛰어놀 수 있는 공간자체가 부족한 우리네에게는 그림의 떡이리라. 야구가 소통에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요소는 매일 경기가 열린다는 점이다. 즉 매일 뉴스를 생산하기 때문에 야구팬들은 습관적으로 결과를 체크하는 경향이 있다. 어제의 경기결과는 오늘의 ‘안주’이다. 그리고 야구처럼 논쟁이 많고 질문이 많은 스포츠도 드물다. 쿠바의 수많은 할아버지들이 매일 공원에 모여 어제의 경기결과를 가지고 논쟁하고 다시 오늘의 경기를 보듯이, 야구는 사람의 입을 열게 한다. 아이들의 끊임없는 질문에 때론 지치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변 외에는 변변한 대화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35년 전 아버지와 처음 야구장을 찾은 이래, 돌이켜 생각해보면 야구장은 개인적으로는 소통의 장소였다. 어린 시절에는 몰입의 대상으로, 중등학교 시절에는 스트레스 해소의 장으로, 대학시절에는 외야석에서 친구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한 잔의 맥주로 날리며 내일을 기약하는 장소로. 이제 성인이 되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사는 처지에서는 어제의 ‘로망’이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야구가 가족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버지와 아이들 그리고 가족과 함께한 지난 토요일 경기는 필자에게는 영화 ‘꿈의 구장’의 마지막 대사 “여기가 천국이네요”가 떠오른 날 이었다. 정말 감사한 하루였다.

동명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경구를 좋아한다. 스포츠에 대한 로망을 간직하고 있다. 현실과 로망은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로망과 스포츠의 '진정성'을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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