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jing못다 한 이야기]<6>여자 핸드볼 맏언니 오영란

  • 입력 2008년 9월 2일 02시 57분


핸드볼 남녀 대표팀 골키퍼인 오영란(오른쪽)-강일구 부부. 둘은 국내 경기에서도 올림픽 때와 같은 관심이 쏠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얼굴 사이에 핸드볼공을 꽉 끼운 채 ‘공 샐 틈, 사랑 샐 틈’ 없는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핸드볼 남녀 대표팀 골키퍼인 오영란(오른쪽)-강일구 부부. 둘은 국내 경기에서도 올림픽 때와 같은 관심이 쏠렸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얼굴 사이에 핸드볼공을 꽉 끼운 채 ‘공 샐 틈, 사랑 샐 틈’ 없는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달 21일 베이징 올림픽 여자 핸드볼 준결승에서 한국이 1점 차의 아쉬운 패배를 당했을 때 일이다.

속이 상한 채 숙소로 돌아온 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책을 했다. 막판에 좀 더 강하게 달라붙어 수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종료 직전 결승골을 내준 것을 자책하는 선수도 있었고, 결정적인 슛 기회 때 골을 성공시키지 못한 상황을 떠올리며 괴로워한 선수도 있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한 선수가 한마디 툭 던진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마지막 골을 못 막은 내 책임이 제일 커. 내가 그걸 막았으면 지지 않았을지 모르잖아.” 순간 조용해졌다.

준결승 때 종료와 거의 동시에 결승골을 허용한 대표팀 맏언니 오영란(36·벽산건설)이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 속상하고 아쉽지만 3, 4위전에서 최선을 다하자.”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는 후배도 있었고, 눈물을 글썽이는 후배도 있었다. 선수들은 이내 다시 어깨동무를 하고 선전을 다짐했다. 그리고 그들은 헝가리를 꺾고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오영란은 네 번의 올림픽에 참가했다. 1996년 애틀랜타에서 은메달을 땄고, 2000년 시드니에선 4위에 머물렀지만 2004년 아테네에서 다시 은메달, 그리고 이번에 베이징에서 동메달을 땄다. 마지막 출전이었던 이번 올림픽에서 오영란은 누구보다 간절히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 금메달은 이제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게 됐다.

올림픽이 끝나고 어렵게 연락이 닿은 오영란은 ‘못 다한 얘기’를 해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그동안 수도 없이 했던 얘기를 다시 꺼냈다.

“올림픽 기간에 국민이 보여준 관심과 응원에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올림픽 말고 국내 핸드볼 경기에도 계속 관심을 가져줬으면 합니다.”

그는 “선수 가족들과 대회 관계자만 찾아와 보는 경기 말고 많은 관중이 응원하고 환호하는 그런 경기를 국내에서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오영란은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두 살배기 딸과 남편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곧 있을 대회 준비를 위해 연습을 해야 하는 데다 초청하는 곳도 많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경기 시구도 했고, 지방의 팬 사인회에도 참석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핸드볼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일이라 생각해 빠짐없이 참석했다.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할 것인지 물었더니 “언제까지라고 딱 정해 놓은 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년이 됐든, 2년이 됐든 체력만 된다면 하는 데까지 해보고 싶다고 했다.

오영란은 남자 핸드볼 실업팀 인천도시개발공사 골키퍼인 남편 강일구(32)와 함께 4일부터 전남 목포에서 열리는 전국실업대회에 출전한다. 둘은 2002년 5월 결혼했다. 오영란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사랑하니까 걱정하는 것.’ 강일구가 오영란을 위해 쓴 글이라고 한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강슛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아내가 걱정됐던 모양이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