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성장한 ‘박세리 키드’ 언니도 놀랐다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7월 5일 03시 03분



《박인비(20·광운대)는 지난달 30일 미국 미네소타 주 에디나에서 끝난 US여자오픈골프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뒤 한국식당에서 동갑내기 동료들과 뒤풀이를 했다. 이 자리에는 신지애(하이마트), 오지영(에머슨퍼시픽), 김인경 등이 참석해 콜라로 축배를 들며 한참 수다를 떨었다. 메이저 첫 승을 올린 박인비와 함께 3일 생일을 맞은 오지영도 미리 축하를 받았다. 》

1988년 태어나 올해 만 20세를 맞은 용띠 동갑내기인 이들은 10년 전인 1998년 박세리(사진)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것에 영향을 받아 골프를 시작했다.

이른바 ‘박세리 키드’로 성년이 된 올 시즌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번 US여자오픈에서는 ‘코리안 군단’ 가운데 박인비를 비롯해 안젤라 박, 김인경(이상 공동 3위)이 5위 안에 든 것을 포함해 8명의 스무 살 선수 모두 예선을 통과해 상위권에 드는 강세를 보였다.

○ 왜 박세리인가

1990년대 후반 국내 골프 붐 속에서 주니어 골프 인구도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어떤 비전이나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이런 가운데 박세리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진출 첫해부터 눈부신 성적을 거두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되자 어린 선수들과 학부모는 ‘제2의 박세리’를 꿈꾸게 됐다. 국내 여자골프 최강 신지애는 “세리 언니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 받아 이듬해인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골프채를 잡았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세리 언니가 없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고 우승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 누가 있나

1980년대 후반 태어나 올해 20세 전후가 된 여자선수 가운데는 유독 대어가 많다.

주니어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자생력을 키웠고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려 유학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은 경우도 있다. 지난해 국내 9승을 올린 신지애, LPGA 2부 투어 상금왕 출신 김송희(휠라코리아), 오지영 등은 아마추어 시절 한국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오지영은 US여자오픈 첫날 선두로 마친 뒤 “이번 대회에 다른 동기 프로와 달리 나만 예선을 거쳐 출전했기에 기죽지 않고 더 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미국 주니어 무대에서 9승을 거두며 탄탄한 기량을 연마했다. 최나연(SK텔레콤)과 지은희(휠라코리아)는 국내 투어에서 경험을 쌓은 뒤 미국 무대로 건너가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US여자오픈 때 우승을 확정지은 박인비에게 오지영과 함께 맥주 세례를 한 김인경은 2006년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공동 수석으로 통과하며 주목받았다.

브라질 교포인 안젤라 박은 지난해 LPGA에서 신인왕에 오르며 국내 기업인 LG전자와 스폰서 계약을 했다.

○ 부족한 2%

허남양 중고골프연맹 부회장은 “박세리 때나 지금이나 주니어골퍼를 위한 국내 환경은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세계 최악으로 불릴 만하다”고 지적한다. 꿈나무 육성을 위한 훈련 여건의 개선과 정책적인 배려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최근 경기 용인시의 한 골프장에서 열린 중고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은 1인당 그린피 13만 원, 카트피 2만 원, 캐디피 2만5000원 등 매일 20만 원 가까운 비용을 내야 했다.

이런 가운데 몇몇 뜻있는 골프계 인사들의 지원은 큰 힘이 되고 있다.

강민구 유성CC 명예회장과 강형모 유성CC 회장 부자는 일찍부터 국가대표와 상비군에게 골프장을 무료로 개방해 박세리를 비롯한 스타들을 길러냈으며 2000년부터는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을 개최하고 있다. 대표팀 감독 출신의 민영호 사장이 이끌고 있는 제주 라헨느 골프장은 지난주 중고대회를 유치하면서 그린피를 7만 원으로 낮춰 호평을 받았다.

지나친 성적 지상주의도 문제다. 학업은 멀리한 채 운동에만 집중하면서 부작용도 심각하다. 민 사장은 “하루 종일 운동한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 어린 나이에 혹사하다 보니 쉽게 운동을 그만두거나 은퇴 후 사회 적응에 애를 먹기도 한다. 다방면에 걸쳐 고르게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