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없는게 오히려 ‘장애’?

  • 입력 2008년 5월 21일 03시 05분


■ 보철다리 피스토리우스 베이징 출전자격 획득 의미

첨단장비 덕 장애인 올림픽 기록 갈수록 좋아져

장애-비장애 구분 무의미… 패럴림픽 없어질 수도

‘장애’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 기관에 탈이 생겨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스포츠계에서는 사전적 의미를 폐기처분해야 할지 모른다. 장애를 보완하는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상징적인 인물이 양쪽 무릎 아래가 없는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1·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17일 피스토리우스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반 선수들과 겨룰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단거리 선수인 그는 의족을 달고 100m를 10초 91에, 200m를 21초 58에, 400m를 46초 34에 주파한다. 올림픽 출전 기준 기록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웬만한 일반 선수보다 빠르다.

그가 이처럼 빨리 달릴 수 있는 데에는 아이슬란드 회사 오수르가 제작한 카본 섬유 소재로 된 특수 의족의 역할이 컸다. ‘J’ 모양의 날처럼 생긴 이 의족은 스프링의 원리로 탄성 에너지를 생성해 강한 추진력을 낸다.

피스토리우스가 2004년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에서 이 의족을 달고 맹활약을 펼쳤고 최근 일반인 대회도 넘보기 시작하자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지난해 ‘선수는 대회에서 스프링이나 바퀴 등 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조항을 만들어 경계했다. 결국 CAS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피스토리우스의 손을 들어줬다.

피스토리우스가 올림픽에 뛸 수 있게 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애인들도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아 얼마든지 ‘비장애인의 세계’로 진입해 경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첨단 장비는 장애인 스포츠에서 이미 승부의 결과를 좌우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이현옥 홍보팀장은 “특수 휠체어를 사용하는 육상 종목이나 특수 스키를 사용하는 동계 스포츠에서 첨단 장비 사용의 유무가 메달 색깔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더 많은 기업의 참여로 장애 보완 장비 개발이 계속되면 기술 발전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 분명하다. 현재 수준에서도 전신 마비 장애인이 목과 팔 가슴 등에 전자장치를 달거나 뇌파를 이용해 몸을 움직일 수 있다. 의족의 경우는 내장 배터리를 이용해 피스토리우스의 것보다 더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한 제품도 나와 있다.

매사추세츠공대 미디어랩의 생체공학자인 휴 헐 씨는 “현재는 장애인 기록이 일반인의 기록보다 느리지만 가까운 미래엔 장애인의 기록이 더 빠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예 장애인 올림픽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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