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뜨거운 응원 물결 속에 실종된 시민의식

  • 입력 2006년 6월 14일 14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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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된 태극기 한국축구대표팀이 토고와 독일월드컵 첫경기를 가진 13일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응원전을 마친 시민들이 응원도구로 사용한 태극기를 쓰레기와 함께 버려 실종된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연합]
쓰레기된 태극기
한국축구대표팀이 토고와 독일월드컵 첫경기를 가진 13일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응원전을 마친 시민들이 응원도구로 사용한 태극기를 쓰레기와 함께 버려 실종된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연합]
2006 독일 월드컵 한국-토고전이 벌어진 13일 밤 전국의 거리응원 열기는 4년 전 한일 월드컵 당시와 차이가 없었지만 응원이 끝난 거리 모습은 4년 전의 시민의식이 실종된 상태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열렬한 응원과 함께 자발적인 뒷정리와 응원 에티켓 등으로 세계인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았던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 문화가 4년만에 크게 변질된 모습이었다.

 [화보]월드컵 시민의식 어디로 갔나요?

◇월드컵 거리응원 뒤 쓰레기 2배나 늘어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는 경기가 끝난 뒤 시민들이 버린 쓰레기로 가득찼고 일부 시민들의 무분별한 폭죽으로 매캐한 거리 곳곳에서는 화약냄새가 진동했다.

경찰 추산 결과 50만명의 인파가 몰렸던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는 경기가 끝난 뒤 거리 곳곳에는 찢겨진 신문지와 먹고 버린 음식물 용기, 맥주캔, 바람 빠진 응원 도구 등으로 뒤덮였다.

특히 올해는 많은 기업이 홍보 활동 차원에서 갖가지 응원 도구와 자료를 나눠주고 잡상인들이 몰려 쓰레기가 더 많았다는 지적이었다.

13일 밤 대구시 수성구 범어네거리에서도 8만여 명이 운집해 열띤 응원전을 벌였지만 경기가 끝난 뒤 시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도로가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14일 대구 수성구에 따르면 이날 응원전으로 범어네거리에서 수거된 쓰레기양은 방석과 음료수 용기, 응원 도구 등 무려 70t으로 2002년 당시 거리 응원전에 비해 2배로 늘었다.

그러나 2002년 당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쓰레기 수거에 나서 행정기관과 함께 효율적으로 주변을 정돈했지만 이번 응원전에서는 그러한 광경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구시 환경관리과 관계자는 "경기 후 안내방송을 들은 시민들이 쓰레기를 모으는 데 동참해주기도 했지만 예전처럼 싸서 집으로 가져가는 일이 적었고 더욱 다양해진 응원 도구 등으로 물량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광장을 찾은 한 시민은 "2002년 월드컵 때는 외국인들이 오니까 청소도 잘 했는데, 지금은 스스로 청소하겠다는 의식이 부족해진 것 같다"며 "자기가 가져온 쓰레기는 자기가 다시 치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광장 일부 지역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행사 주최자들이 동원한 도우미들과 몇몇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쓰레기를 치웠으나 바로 옆에서는 본체만체 뒤풀에만 열심이고 쓰레기 치우는 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한 행사 도우미는 "응원 끝난 뒤 청소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응원을 잘 즐긴 만큼 청소도 잘 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을 배려하는 모습도 사라져

아쉬운 점은 거리의 쓰레기 뿐만이 아니었다.

주위 사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응원 관중 대열 속에서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거리 곳곳에서 안전사고 위험은 신경 쓰지 않고 하늘을 향해 폭죽을 쏘는 사람 등 주변을 배려하는 모습은 부족한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토고전 승리에 흥분한 시민들 가운데는 과잉 행동으로 추태를 보이기 했다.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에서는 당초 차량통제가 0시 30분에 해제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일부 시민들이 도로에서 벗어나지 않고 쓰레기 더미가 장애물처럼 거리를 가득 메우는 바람에 새벽 1시 30분경 왕복 10차선 도로의 부분 소통이 겨우 시작되고 2시가 넘어서야 차량통행이 정상화됐다.

부산 도심 곳곳에서는 토고전 승리의 감격해 흥분한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추태를 부려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경기 종료 직후 부산 남구 대연동 용소삼거리는 경성대와 부경대 등지에서 한꺼번에 몰려나온 인파들이 인도는 물론 도로까지 점거한 채 행진을 벌이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또 30여명의 청년들이 지나던 시내버스를 세우고 시내버스 지붕 위로 올라가 난리법석을 피웠고, 이중 20대 남자는 팬티차림으로 20여분간 스트립쇼를 벌이기도 했다.

일부는 도로주변에 불까지 질러 경찰이 출동, 제지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산 동래구 사직동과 연산동 일대 도로도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과 사직야구장에서 응원하던 수만 명의 시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나오면서 1시간여동안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주경기장 인근 도로에서는 20대 남자가 몰던 오토바이가 인파 쪽으로 돌진하다 택시와 충돌하는 사고가 빚어지기도 했다.

부산 부산진구 서면 일대에서는 일부 술 취한 이들이 지나던 택시 등 자동차 지붕 위로 올라가 환호하다 승강이를 벌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해운대해수욕장으로 자리를 옮겨 뒤풀이 응원전을 펼치던 일부 시민들은 흥분해 바다로 뛰어드는 소동을 벌여 경찰이 긴급히 출동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폭주족으로 보이는 10여대의 오토바이들이 굉음을 울리며 해운대 해변도로의 인파 사이를 질주하는 아찔한 장면도 연출됐다. 심지어 자동차 경주하듯 경적을 울리며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때문에 행인들이 놀라 대피하는 장면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심야 교통 대책도 문제

월드컵 한국 대 토고전 거리응원을 끝낸 시민들 상당수가 마땅한 귀가 교통수단이 없어 한밤중 발을 동동 굴렀다.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는 인파가 워낙 많았고 한꺼번에 택시를 잡으려는 승객들이 몰린데다가 새벽 2시까지 연장 운행한 전철의 경우도 일부 역을 폐쇄해 시민불편이 가중됐다.

지하철공사측은 "시청앞 서울광장에 모였던 20만 명이 한꺼번에 몰릴 경우 안전사고가 우려됐다"며 시청역에 전동차를 세우지 않고 무정차 통과시켰다.

이 바람에 인근 광화문역과 을지로입구역은 귀가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으며 택시들은 합승이나 ‘더블 요금’ 등 ‘배짱 영업’을 서슴지 않았다.

일부 버스도 새벽 2시까지 연장 운행했지만 대부분의 시내버스는 평소대로 노선 버스를 운행해 심야 귀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성하운기자 haw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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