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잘 싸웠다… 우린 참 행복했다”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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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거 지면 어때? 우리는 즐겁기만 한데.” 태극기 앞에 우리는 하나가 됐다. 전광판을 통해 중계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전을 보기 위해 19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 쌀쌀한 날씨에도 2만5000여 명이 모여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 때의 응원 열기를 되살렸다. 김동주 기자
“그까짓 거 지면 어때? 우리는 즐겁기만 한데.” 태극기 앞에 우리는 하나가 됐다. 전광판을 통해 중계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전을 보기 위해 19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을 가득 메운 팬들. 쌀쌀한 날씨에도 2만5000여 명이 모여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 때의 응원 열기를 되살렸다. 김동주 기자
인생살이에 항상 해피엔드만 있을까. 행복한 결말. 스포츠에서 오히려 그건 삼류일 것이다.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각본 없는 드라마. 그래서 절로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 것. 그게 스포츠의 세계다. 공은 둥글고 영원한 승자나 패자는 없다.

한국야구대표팀은 19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0-6으로 졌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초대 챔피언은 ‘핵 타선’ 도미니카공화국에 3-1로 역전승한 ‘붉은 악마’ 쿠바와 일본이 21일 오전 11시에 겨루는 결승전에서 가려진다.

졌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자랑스러운 태극전사들이여.

그대들은 너무나 잘 싸웠다. 여섯 번을 내리 이긴 뒤 단 한번 졌을 뿐. 결승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라이벌 일본에 졌다고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다. 설령 우리가 세계 최강이라 해도 한 팀을 세 번 연속 이기긴 힘들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리보다 앞선 일본이었다. 원래 우리의 목표는 8강에 올라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게 아니었던가.

그대들 덕분에 모처럼 전국은 다시 하나가 됐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과 잠실야구장, 또 인천 대구 광주 울산 포항 고양 등지에서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미국 현지의 반응도 뜨거웠다. 교민들은 생업을 제쳐 놓고 야구장을 찾았다. 애너하임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두 번의 한일(韓日)전은 승패를 주고받았지만 응원전만큼은 두 번 모두 우리의 완승이었다. 오죽했으면 미국 팬들까지 “Dae∼Han Min Kook(대∼한민국)”을 같이 외쳤을까.

‘국민타자’ 이승엽(요미우리)의 홈런 행진은 2년 전 그를 외면했던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후회 시리즈’로 이어졌다. 선발과 마무리를 가리지 않은 박찬호(샌디에이고)의 투혼은 한때 국민의 꿈과 희망이었던 ‘코리안 특급’의 부활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김인식(한화) 감독은 “일곱 번 싸워 한 번 졌지만 진 것은 진 것”이라면서도 이런 선수들을 향해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난다”고 했다.

마이너리그 더블A 수준이라던 한국 야구는 이제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섰다.

덕장 김 감독이 이끄는 ‘휴먼 볼(human ball)’은 데이터를 중시하는 일본의 ‘스몰 볼(small ball)’과 힘을 앞세운 미국의 ‘빅 볼(big ball)’을 압도했다. 투수나 타격에 비해 수준 차이가 더 난다는 수비에선 오히려 우리의 ‘짠물 수비’가 메이저리그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본 야구는 이제 더는 큰소리치지 못할 것이다.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의 ‘30년 발언’은 유치한 호승심으로 이미 결론이 났다.

하지만 자만은 금물이다. 이제 우리는 6승의 감격과 1패의 쓰라림을 거울로 삼아 척박한 토양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온 한국 야구를 부흥시키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태극전사들이여, 우리는 그대들이 있어 행복했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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