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점 원정대 스타트]2000km 첫발 내딛다

  • 입력 2005년 3월 9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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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헌트=전창기자
워드헌트=전창기자
“가자, 북극점으로!”

혹한의 얼음 바다에서 인류의 새 신화를 엮어낼 대장정이 시작됐다.

9일 오전 1시 30분(현지 시간 8일 오전 10시 30분). 박영석(朴英碩·42·골드윈코리아 이사) 대장이 이끄는 북극점 원정대(주최 동국대학교 박영석세계탐험협회, 후원 동아일보사 LG화재 엔씨소프트 노스페이스 SBS)가 북극점을 향해 마침내 첫발을 내디뎠다.

박 대장과 홍성택(洪成澤·39·촬영, 장비담당·파고다아카데미) 오희준(吳熙俊·35·식량담당·영천산악회) 정찬일(鄭贊一·25·용인대 2005년 졸업) 씨로 짜인 4명의 원정대는 이날 북위 83도 3분 090, 서경 74도 6분 431에 위치한 캐나다 최북단 워드헌트에서 도보 대장정에 들어갔다.

지난달 24일 서울을 떠나 27일 캐나다 최북단 이누이트 마을 레졸루트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현지적응훈련을 해 온 원정대는 당초 6일(현지 시간 5일)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기상 악화로 비행기가 뜰 수 없어 사흘이 지체됐다.

현지 날씨는 섭씨 영하 45도의 강추위에 초속 10m의 거센 북동풍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55도. 대원들은 이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100kg이 넘는 썰매를 직접 끌며 북극을 향해 60일 동안 걸어야 한다. 북극까지의 직선거리는 775km이지만 실제로 걸어야 하는 거리는 2000km가 넘는다. 북극점 도착 예정일은 5월 7일.

박 대장은 출발에 앞서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북극점을 밟는다. 난관이 겹쳐 도달 예정일보다 늦어지더라도 1%의 가능성만 있으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그는 2003년 북극점 정복에 도전했다가 북위 86도 지점에서 포기한 아픈 기억이 있다.

올해 각국에서 온 북극점 도보 원정대는 7개 팀. 이 중 박영석 원정대가 첫 스타트를 끊었다. 세계 극지 탐험가들의 사랑방인 더폴스닷컴(www.thepoles.com)은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한국 원정대 출발소식을 크게 다루고 있다.

원정 최대 난코스는 초반 200km가 넘게 널려 있는 난빙대(얼음산) 지역. 리드(얼음이 갈라져 드러난 바다)는 썰매를 보트 삼아 목숨 걸고 건너야 한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해를 덮은 얼음이 얇아진 탓에 리드가 늘어나 도보로 탐험 가능한 기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2003년 영국의 펜 하도(43) 씨가 북극점을 밟은 이후 지난해 6개 원정대가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박 대장은 이번 북극점 원정에 성공하면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2001년),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2002년)에 이어 지구 3극점(남북극, 에베레스트)을 모두 밟는 ‘산악그랜드슬램’을 세계 최초로 달성하게 된다.

부대장 격인 홍성택 대원도 남극점 도달(1994년), 에베레스트 등정(1995년)에 이어 세계에서 15번째로 지구 3극점 등정자 명부에 이름을 올린다.


워드헌트=전창기자 jeon@donga.com

▼어떻게 생활하나▼

섭씨 영하 50도에 초속 14m 이상의 블리자드가 항상 부는 가혹한 북극해. 탐험 방식 중 가장 힘든 도보를 택한 원정대는 과연 어떻게 생활을 할까?

60일 동안의 원정 중 하루 일과는 자연순응적이다. 해뜨기 2시간 전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고 해뜨기가 무섭게 걷기 시작해 해질 시간에 텐트를 치고 식사를 한 뒤 잠자리에 눕는다.

한겨울과 여름 각각 4개월씩 밤과 낮만 계속되는 북극지방. 봄이 다가오는 9일 현재 북위 83도의 워드헌트에선 오전 7시29분 해가 떠서 오후 3시11분에 해가 떨어져 일조시간은 겨우 7시간 40분. 초반 펼쳐진 난빙대와 짧은 운행 시간이 겹쳐 하루 전진 거리가 10㎞를 넘기 힘들다. 하지만 계속 하루에 30분 꼴로 해가 길어져 난빙대를 벗어나는 원정을 시작한 지 20일 이후부터는 일조시간이 18시간 가까이 돼 한밤중 운행도 가능해 수십㎞를 전진할 수 있다.

원정대원 한명이 하루 섭취하는 식량의 무게는 겨우 1㎏ 정도. 아침과 저녁은 쌀과 고기, 야채 등을 섞어 냉동 건조시켜 만든 비빔밥과 역시 건조시킨 국거리를 일인당 각 끼니 200g씩에 눈을 녹여 끓여 먹는다. 여기에 칼로리 보충을 위해 지방분을 따로 밥에 첨가한다. 점심은 텐트를 치지 않고 서서 먹는 이른바 행동식. 손바닥만한 딱딱한 빵 3개, 사탕 10개, 작은 쿠키 3개, 초콜릿바 2개가 전부다. 여기에 아침 출발 전 보온병에 준비한 영양음료가 곁들여진다. 부실해보여도 일인당 1일 칼로리가 5000을 넘어선다.

원정대원들이 착용하는 옷은 박영석 대장 등 대원들이 그동안 극지 경험을 살려 소재 선택이나 디자인 작업에 직접 참여해 만든 것. 운행할 때는 보통 내복포함 윗도리 4벌, 바지3벌을 입는다. 얼굴부위와 함께 신체 중에서 동상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이 발과 손. 양말은 신발처럼 커다란 기모가 달린 것까지 3개, 장갑도 3개를 착용한다. 문제는 장갑이 두터워 장비 수리할 때 장갑을 한번 벗으면 체온을 빼앗겨 하루종일 고통스럽다는 것.

원정 중 유일한 열원인 버너를 켜는데 사용하는 특수 휘발유는 하루 2L. 리드에 대원이 빠지면 동상을 막기 위해 그 자리에서 텐트를 펴고 옷을 벗긴 뒤 말려야하기 때문에 원정에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

잠자리인 텐트는 바람에 강한 구조라는 점 이외에 일반 야영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안에 1㎝ 두께의 매트리스를 깔고 슬리핑백을 올려놓은 것이 전부다. 열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4명의 대원이 움직일 틈도 없이 지그재그로 누워 옆사람끼리 머리와 다리가 부딪힌다.

워드헌트=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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