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44일만에 맛본 한잔술 “몸도 마음도 사르르”

  • 입력 2004년 1월 14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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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보름만의 여유’. 남극점에 도착한 원정대원들이 텐트 안에서 모처럼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44일동안 함께한 스키를 만져보는 강철원대원(오른쪽)과 오희준 대원. 강대원은 부상으로 미국 남극기지의 도움으로 특별기편으로 패트리엇힐 베이스캠프로 후송됐다. 사진제공 남극원정대
‘한달보름만의 여유’. 남극점에 도착한 원정대원들이 텐트 안에서 모처럼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44일동안 함께한 스키를 만져보는 강철원대원(오른쪽)과 오희준 대원. 강대원은 부상으로 미국 남극기지의 도움으로 특별기편으로 패트리엇힐 베이스캠프로 후송됐다. 사진제공 남극원정대
“국민들의 열화 같은 성원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44일 만에 남극점에 도착, 무지원 남극탐험 최단기간 신기록을 작성한 박영석 대장(41·동국대 산악부 OB, 골드윈코리아) 이하 5명의 대원은 13일 밤을 남극점 텐트에서 거의 뜬눈으로 보냈다. 쏟아지는 국민들의 축하메시지를 읽느라 잠잘 틈이 없었던 것.

대원들은 그렇게 먹고 싶었던 김치도 맛봤다. 남극점 미군기지에 연구원으로 와 있던 한국인 남지우씨가 김치 두 포기를 선물한 것. 또한 남극점을 다녀 간 미국의 한국연구원 김효민씨는 한국원정대의 성공을 축하하는 편지와 함께 소형 태극기를 남극점기지 가장 높은 곳에 게양해 놓았다.

그러나 기쁨 뒤에는 슬픔도 있었다. 강철원대원(37)이 허벅지 피부가 벗겨져 근육이 보일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은 것. 강대원은 남극점에 도착한 뒤 그대로 쓰러졌다.

강대원은 남극점 미국기지의 도움으로 의사가 있는 베이스캠프 패트리엇힐로 긴급 후송됐다. 강대원을 응급처치했던 미국기지 의사는 “저런 몸으로 어떻게 걸을 수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강대원 후송 이후 나머지 대원들은 미국 기지에서 선물한 위스키 한병으로 목을 축이며 원정 성공을 자축했다.

원정대원들은 42일 만에 남극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하는 영국의 여성산악인 피오나 소윌(38)도 만났다. 소윌은 처음에는 반갑게 원정대를 맞이했으나 출발점 얘기를 하자 원정대와 대화를 애써 피했다. 소윌은 “내가 반나절 앞서나간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원정대가 소윌이 출발한 지점까지 소요된 시간은 꼬박 3일.

원정대의 귀국일은 예상할 수 없다. 패트리엇힐까지 가는 대행사 경비행기는 한번 뜨는데 20만달러(약 2억4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게다가 바람이 잦아져야 하기 때문에 언제 뜰지 도 모른다.

태양이 24시간 머리 위에서 맴도는 남극점. 그래도 대원들은 오랜만에 맞이하는 꿀맛휴식이 즐겁기만 하다.

전 창기자 jeon@donga.com

▼"아빠 빨리와서 나랑 목욕가요"…원정대 가족들▼

13일 박영석 원정대가 남극점을 밟은 순간 박 대장의 부인 홍경희씨(41)는 유학중인 큰아들 성우군(14)을 만나기 위해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가 있었다. 과연 남편의 크나큰 위업 달성 때 아내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성우 아빠가 워낙 원정을 많이 다녀서 덤덤해요. 대원 모두 무사히 목표를 달성해 고마울 따름입니다.”

홍씨는 산악 그랜드슬램 달성을 위해 마지막 남은 북극점 원정에 대해선 “자신이 목표로 삼아서 하는 일이니까 끝까지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원정 성공 소식을 들은 성우군은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자랑스럽다. 빨리 만나 함께 목욕탕에 가고싶다”며 기뻐했다.

이치상 대원(39)은 아내 한명희씨(38·충북 음성군 금왕읍)와 부부산악인. 한씨는 “그 동안 고산에만 올랐지 극지는 이번이 처음인데 너무 잘해줘서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부부가 속해있는 일출산악회에서 플래카드를 내걸고 동네잔치라도 벌여야할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대한산악연맹도 축제 분위기. 이틀 연속 직원들은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축하전화를 받느라 분주했다. 연맹 김병준 전무(56)는 “다음에 북극점까지 밟아 산악그랜드슬램을 완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동아닷컴(www.donga.com)이 운영하고 있는 ‘원정대에게’ 게시판에도 축하와 격려의 글이 꼬리를 물었다.

▽시애틀에 사는 사람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진 대한인들과 축하를 주고받을 일입니다. 쉽게만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표본이 되고 개인 이기주의와 파벌주의로 변질된 우리사회에서 서로 돌보고 같이 잘사는 원동력이 되길 기원합니다.(박태출)

▽따뜻한 부산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축하합니다. 이 말로는 부족하겠지만 더 이상 표현할 말이 없네요.(임은주)

▽요즘같이 정치인들이 사람 열불나게 하는 시점에서 정말 큰일 하셨습니다. 정치인들이 우리 대원들이 겪은 어려움의 1만분의 1이라도 배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각균)

▽끝없는 열정과 도전정신.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안겨준 대원들 정말 축하드립니다.(정정현)

전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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