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의 두 마라토너…이들은왜…

  • 입력 2002년 11월 22일 17시 57분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1, 3위를 차지한 손기정(오른쪽)과 남승룡이 만감이 교차된 듯 굳은 얼굴로 시상대 위에 서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1, 3위를 차지한 손기정(오른쪽)과 남승룡이 만감이 교차된 듯 굳은 얼굴로 시상대 위에 서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어느 독일인이 쓴 ‘마라톤 영웅’ 손기정옹에 관한 글이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0월 독일의 한국대사관 문화홍보원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KOREAheute (www.koreaheute.de)’에 슈테판 뮐러라는 이름의 독일인이 기고한 글이다. 한글로 번역돼 지난해부터 인터넷을 통해 조금씩 퍼진 이 글은 지난 15일 손옹 별세와 함께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다. 전문은 동아닷컴(www.donga.com)에서 볼 수 있다. 삼성그룹에선 전문을 사원들에게 메일로 보냈을 정도. 다음은 주요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나는 어느 여름날 우연히 사진 한 장 때문에 한국, 아니 한민족에 얽힌 엄청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두 명의 일본인이 1등과 3등을 차지한다. 하지만 시상대에 오른 두 일본인의 표정은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슬픈 표정이다. 왜 두 사람은 슬픈 표정으로 시상대에 서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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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바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코리아의 ‘손’과 ‘남’이라는 젊은이었다. 시상대에 오른 그들의 가슴에는 일장기의 붉은 원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일본 국기가 게양되었다. 두 사람은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그들은 부끄러움과 슬픈 얼굴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강점기 하에서 이 기사를 실었던 동아일보는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한다. 이 일로 일본은 동아일보의 폐간을 결정한다.

52년후 88서울 올림픽. 개회식 세리모니에서 백발이 성성한 손기정씨가 세살배기 아이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며 손에 성화를 들고 달린다. 그 당시 모든 한국인들은 이 노인에게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던 것이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손기정과 체구가 비슷한 황영조라는 한국의 젊은 마라토너가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과 독일 선수를 따돌리고 월계관을 차지한다. 경기장에 한국 국기가 게양되었을 때 황영조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 다음 그는 관중석으로 달려가 손기정에게 금메달을 선물하며 깊은 경의를 표했다.

도서관에 한 번 가 보라. 그리고 시상대에 선 두 마라토너의 사진을 보라. 그 순간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김화성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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