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히딩크 감독-日 닛산차 곤 사장 '닮은꼴 영웅'

  • 입력 2002년 6월 23일 18시 54분


히딩크 감독(왼쪽) 카를로스 곤 사장
히딩크 감독(왼쪽) 카를로스 곤 사장
비슷한 시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벽안(碧眼)의 외국인 영웅이 탄생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거스 히딩크 감독(56)과 일본 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사장(48).

분야는 다르지만 두 사람 모두 ‘기적’을 이루어냈고 연고주의와 정실인사의 폐해 극복, 합리적이면서 강력한 리더십, 세계화 시대에 적합한 경력 등 닮은 점이 많다.

둘은 우선 내국인이 갖고 있던 한계를 극복해냈다. 히딩크 감독은 연고주의가 작용하던 국가대표 선발시스템을 깼으며 곤 사장은 일본식 구조조정의 한계를 극복했다.

적자에 시달리던 닛산차를 2년 만에 흑자로 이끌어 일약 일본의 영웅으로 떠오른 곤 사장은 연공서열이나 종신고용제, 연(緣)에 따른 거래관행 등 관료적 사고와 기존 관행에 충실한 일본식 경제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젊은 인재 등용도 공통점.

곤 사장은 젊은 중견간부를 중심으로 혁신팀을 만들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혁신적인 제안을 독려했다. 혁신팀이 임원을 거치지 않고 자신에게 직접 보고하도록 주문하는 등 수직적 체계에 길들여진 커뮤니케이션 문화를 깨기 위해 노력했다.

히딩크 감독 역시 김남일 최진철 송종국 이을용 등 기존 국가대표팀에 끼지 못했던 ‘숨은 진주’들을 발탁했고 한국 축구팀 선후배 사이의 경직된 문화를 깨기 위해 노력했다.

기본기와 스피드 중시도 비슷하다.

히딩크가 추구하는 한국팀의 스타일은 체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축구와 스피드를 살린 공격. 곤 사장 역시 철저한 구조조정을 통해 군살을 제거한 뒤 공격적인 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그는 ‘프로는 단순하고 명쾌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원칙 아래 과거 일본인 최고경영자(CEO)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신념이 강하고 위기적 상황일수록 과감한 전략을 사용한다는 점도 닮았다.

두 사람은 ‘서구인은 기술적인 측면만 강조한다’는 한국인과 일본인의 고정관념을 깼다. 히딩크 감독은 과거 한국인 감독보다 더 ‘이기고자 하는 투혼(鬪魂)’을 강조한다. 곤 사장 역시 “기업의 최고 재산은 종업원의 ‘하려는 의지’이며 이를 얼마나 이끌어내느냐가 기업을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고 강조해왔다.

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자질을 갖춘 점도 같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와 스페인에서 감독을 역임했고 영어 독어 스페인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다. 프랑스 국적의 곤 사장은 레바논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브라질에서 성장했으며 프랑스 최고의 기술학교인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했다. 그는 “내겐 국적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외국땅에서 자신의 전설을 만들어냈다.

곤 사장은 일본만화에 ‘경영의 마술사’로 그려지는 등 신화적 인물로 대접받고 있으며 타임지와 CNN이 작년 말 선정한 올해의 CEO에서 빌 게이츠를 제치고 1위로 떠올랐으며 차기 르노그룹 회장 ‘0’순위로 꼽히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김주현 부원장은 “일본에서 왜 외국인이 주도한 구조조정이 성공했는지 진지하게 분석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히딩크 감독이 한국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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