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다, 이들이 흘린 땀을

  • 입력 2002년 6월 15일 01시 50분


월드컵 첫 16강 진출. 이제 더 이상의 한은 없다. 그토록 어렵게만 느껴지던 월드컵에서의 16강도 결코 그림의 떡이 아니었다. 한국축구의 저력을 효율적으로 그라운드에 끌어만 내면 언제든, 어떤 상대를 만나든 이뤄낼 수 있는 가능한 목표였다.

역대 월드컵에서 한국은 승리의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을 맛보곤 했다. 기회는 두 차례 있었다. 94년 미국월드컵대회 두 번째 경기였던 볼리비아전이 첫 번째 기회였다. 하지만 ‘풋내기’ 한국은 긴장과 부담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경기 종료 직전 골키퍼와 맞서는 찬스를 놓치는 바람에 이미 달성했어야 할 첫 승 기회를 놓쳤다. 98프랑스월드컵 첫 경기 멕시코전에서도 그랬다. 전반 28분 하석주의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월드컵 사상 첫 선취골을 기록했을 때만 해도 온 국민은 첫 승 희망에 부풀었으나 불과 2분 후 하석주는 퇴장을 당했고 수적 열세 속에 1-3으로 무너지는 불운을 겪었다. 그때마다 늘 월드컵 1승은 한국과의 인연을 거부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달랐다. 한국은 쟁반 위의 사과를 집어먹듯 너무도 손쉽게(?) 승리를 따냈다. 경기마다 온 국민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투혼을 불살라야 했던 역대 월드컵 때의 모습과는 천양지차였다. 그라운드에 선 선수들은 ‘승리가 당연하다’는 듯 확신을 갖고 움직였고 압도적인 플레이로 상대를 제압해 나갔다.

‘이기는 것도 버릇’인 법. 첫 경기 폴란드를 제압한 한국은 미국과 비긴 데 이어 마침내 강호 포르투갈마저 꺾는 쾌거를 이룩했다.

한번 이겨본 한국축구의 눈높이는 이제 대회마다 올라갈 것이다. 눈물과 회한의 연속이었던 역대 한국 월드컵 도전사는 빛바랜 사진첩 속의 추억으로 이야기될 것이다.

추억 속의 월드컵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프랑스월드컵까지 한국이 거둔 성적은 14번의 본선 1회전 경기에서 4무10패. 64시간의 장거리 비행 끝에 도착했던 54년 스위스 대회는 사실상 참가에 의미가 있었다. 헝가리전에서 월드컵 사상 최대 점수차인 0-9로 패했고 이어 터키와의 2차전에서도 0-7로 완패해 최악의 월드컵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한동안 월드컵과 인연이 없었던 한국은 86년 멕시코대회 때 32년 만의 본선 진출을 달성했으나 이탈리아 불가리아 아르헨티나와 한 조에 편성되는 최악의 대진운에 울어야 했다. 1무2패. 이어진 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서는 3전 전패의 수모를 당했고 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2무1패의 가장 좋은 성적을 남기며 가능성을 엿봤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에 0-5로 완패하는 수모 속에 차범근 대표팀 감독이 중도 경질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져 한국축구에 깊은 멍을 남겼다.

그러나 월드컵 도전 6번째 무대인 이번 2002한일월드컵에서는 16강 진출을 이루며 과거의 쓰라린 기억을 모두 날려보냈다.

인천〓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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