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韓-日협력시대]J리그 현장스케치

  • 입력 1996년 12월 31일 18시 15분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 서로 잘 알고 있는 듯 하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양국의 사정이다 보니 「축구」도 그 예외는 아니다. 올해로 15년째를 맞는 한국 프로축구와 지난 93년 화려한 출범 이후 5년째에 접어든 일본 J리그. 축구 전문기자인 동아일보 李 勳(이훈)기자와 일본 아사히신문 아리요시 마사노리(有吉正德)기자가 일본과 한국을 교환 방문, 양국 프로축구의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李勳=동아일보 기자」 두툼한 외투가 어울리는 초겨울. 웃통을 벗어 던진 젊은이들이 리드미컬한 북소리에 맞춰 수백개의 크고 작은 깃발을 흔들어 댄다. 스타디움은 녹색과 붉은색의 거친 파도. 그 위로 일사불란한 율동과 뜨거운 함성…. 그라운드를 내달리는 선수의 거친 숨소리보다 바라보는 숨결이 더욱 가빠온다. 스모와 프로야구로 대변되던 일본 프로스포츠에 「혁명」으로 다가선 J리그. 출범 4년만에 J리그는 「절제와 냉정」의 일본인들 내면에서 「열정과 환희」를 끌어냈다. 가와사키 베르디와 가시마 안틀러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열린 지난해 11월9일 가와사키 토도로키 스타디움. 경기시작 네시간전인 오전 10시반. 경기장 주변에 자리를 깔고 맥주를 마시며 입장을 기다리는 붉은 유니폼 한무리. 이들은 이날 우승을 확정짓는 안틀러스를 보기위해 달려온 응원단 「인파이트」소속의 열광팬들이다. 다른 한편엔 경기후 열리는 하시라, 히로나가 선수(이상 베르디)의 사인회 번호표를 받으려는 녹색 유니폼 한무리가 길게 늘어서 있다. 이윽고 기다리던 입장. 무승부가 없는 J리그에서 「로열 박스」는 한국에서 천대받는 골문뒤 스탠드다. 승부차기에서 효과적인 응원을 하기엔 이곳이 제격. J리그 탄생후 생겨난 새 풍속도다. 경기시작 한시간전. 양팀 응원단이 위치한 골문뒤는 말 그대로 북새통. 기념품 매장과 도시락을 파는 판매대마다 성시다. 다른 한편에서는 깃발을 이어붙이고 그림을 그려 넣느라 얼굴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다. 응원회의가 진지하다. 그라운드에는 벌써 함성이 터진다. 팬들이 참여하는 페널티 킥 대결과 깃발들고 이어달리기 행사. 어설픈 슈팅에 경기장은 웃음바다…. 축제는 이미 한창이다. 경기장은 여성의 향기로 가득하다. 「여자를 잡아야 남자와 아이도 따라온다」는 치밀한 계산의 산물이다. 고무로 도모코(27·여·회사원)는 『축구는 「젊은 스포츠」, 프로야구는 「배나온 뚱보들의 스포츠」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설명한다. 사복차림의 선수들이 잔디밭을 어슬렁거린다. J리그 스타들은 포르셰를 몰고 귀고리를 다는 「오빠 부대」의 우상. 크리스티앙 디오르, 조르지오 알마니, 블랙 앤드 화이트…. 입고 있는 옷은 거의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작품. 발걸음을 따라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인다. 마침내 경기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렸다. 관중석에선 일제히 하얀 눈처럼 색종이 다발이 쏟아진다. 거친 태클과 스피디한 돌파가 한국 축구라고 한다면 힘보다는 기술, 쇼트패스를 통한 아기자기한 스타일의 경기가 일본축구다. 남미출신 용병이 70%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싼 몸값에다 경기취향이 맞기 때문. 이날 경기는 베르디의 5대0 완승. 그러나 안틀러스 응원단의 북소리는 조금도 작아지지 않는다. J리그 탄생의 가장 큰 성과는 뜨거운 축구붐. 지난 93년 23만6천여명이던 초등학생 선수가 94년 28만여명으로 늘었고 최근 5년간 고교 선수는 3만1천명 증가했다. 각 팀은 유스팀(16∼18세)과 주니어유스팀(12∼15세)을 운영하며 일본축구의 「미래」를 키운다. 이들은 전문코치의 지도로 파란 잔디위에서 볼감각을 익히며 자라난다. 사시사철 파란 잔디구장만 30개(1만5천석이상). 특히 「새싹」들은 더이상 한국축구에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다. 유일한 고교생 J리그 선수 야마구치(18·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그는 『오는 2000년대엔 일본축구를 세계 정상권으로 끌어올리겠다』며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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