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기 쓸수록 수학성적↓ 아냐”…교육부는 왜 평가원에 발끈했나

  • 뉴시스
  • 입력 2024년 2월 18일 10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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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기 1시간 더 쓰면 수학 3점씩 하락해'
교육부가 확인해보니…PISA 원문은 정반대 분석
평가원 측 "본인도 잘못 시인"…보고서 수정 조치
독립성 보장된 평가원에 경고성 공문…"전례 없어"
전 평가원장 "섣부른 해석 어려워…외압은 안 돼"

교육부가 독립성이 보장된 국책연구기관에 “보고서가 왜곡됐다”며 이례적으로 경고한 것은 내년 학교에 도입 예정인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여론을 고려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기관에서 즉각 잘못을 시인하고 보고서를 수정하면서 일단락되는 모습이지만, 바깥에선 중앙 부처가 직접 경고성 공문을 보낸 것은 과하지 않냐는 지적도 있다.

18일 교육부 등에 따르면,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은 최근 ‘2023년 디지털교육백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2022 결과를 통해 본 디지털 리터러시’ 대목을 수정했다.

해당 대목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에서 작성한 것이다. 교육부는 KERIS와 평가원 양측에 공문을 보내 정식으로 “해당 기술 내용이 PISA 2022 보고서의 핵심 내용과 다르다”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정과 재발 방지책 마련도 촉구했다.

당초엔 우리나라 학생들이 학습 활동에서 ‘디지털 자원’을 1시간 더 쓸 때마다 수학 성취도 평균 점수가 3점씩 하락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하지만 고쳐진 수치를 보면, 수학 성적이 가장 낮은 것은 디지털 기기를 아예 안 쓴 학생들이었다.

PISA는 만 15세 학생들의 읽기·수학·과학 소양의 성취·추이를 국제적으로 비교하고 성취 간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3년 주기로 시행되는 국제 비교 연구다.

이번 PISA 2022는 OECD 회원국 37개국을 비롯한 총 81개국에서 약 69만 명이 참여했다. 한국은 지난해 5월9일~6월3일 중학교(3학년) 13개교, 고등학교(1학년) 168개교 등에서 총 6931명이 조사에 참가했다.

PISA 결과가 나오면 매번 국책연구기관인 평가원에서 분석한다. 평가원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출제하는 등 그 권위가 있다고 평가된다. OECD의 PISA 역시 대규모 학생들이 참여하는 점 등으로 중요성이 높다.

교육부 측은 ‘디지털 기기를 1시간 더 많이 쓸수록 수학 성적이 3점씩 하락한다’는 평가원 측의 분석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크게 당혹했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PISA 2022 보고서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공통과목 수학·영어·정보 교과에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할 예정이다. 디지털 교과서는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로 구동된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강조하는 국정과제다. 교육부 장관 2기 임기를 맡기 전부터 ‘HTHT’가 교육의 미래라고 강조해 왔다.

HTHT는 ‘하이터치 하이테크’의 약자로, 기존의 지식 전달은 AI 기술에 맡기고 교사는 학생의 사회·정서·창의적 역량을 기르는 역할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가 성적을 떨어뜨린다’는 분석은 이 부총리의 교육부가 쉽게 넘기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직접 경위를 분석하고 경고 공문을 보낸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교육부는 평가원 측이 왜곡을 했다고 판단했다.

평가원 집필진은 수정 전 ‘2023 디지털교육백서’에서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학생일수록 수학 성적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적었다. 집필진이 인용한 자료(1시간 당 수학 -3점)도 OECD가 제공한 원자료(로데이터) 중 하나였다.

교육부는 본문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OECD는 PISA 2022 본문에서 “학교에서의 적당한 디지털 기기 사용은 더 높은 성과와 관련이 있다”(Moderate use of digital devices in school is related to higher performance)고 기술했다. 평가원 연구진이 쓴 자료는 PISA 2022 보고서 본문에는 표시돼 있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평가원 측이 당초 썼던 자료는 PISA 2022 보고서에 있는 부록에서 발췌된 자료”라며 “본문의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참고할 수는 있지만, 이 자료만 단독으로 쓰면서 백서를 기술한 점은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연구를 수행한 본인이 어떤 의도와 생각으로 OECD 본문 대신 다른 자료를 사용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뉴시스는 평가원 집필진의 입장을 들어보고자 했으나, 평가원 측에 3차례 이상 접촉 끝에 “본인이 부담스러워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답변만 얻을 수 있었다.

평가원 고위 관계자는 “디지털 교육의 변화 흐름에 불필요하게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은 잘못”이라며 “우리 스스로도 재발 방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육부와 평가원의 설명대로 연구자의 오독에 따른 해프닝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PISA 2022 연구의 한계가 뚜렷하기 때문에 과민 반응이라는 평도 있다.

성기선 전 평가원장(가톨릭대 교수)은 뉴시스와 통화에서 “PISA는 원샷 서베이(설문)라 원인과 결과, 효과 분석은 불가능하다”며 “(교육부와 평가원 집필자) 둘 다 완전하지 않은 주장”이라고 했다.

PISA 분석만으론 디지털 기기가 학생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성적 수준 등 변수를 통제하고 1주일 동안 기기를 쓰게 하는 등 실험을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성 전 원장은 “교육부가 연구기관에 잘못을 했다며 엄중 경고한 사례는 없었다”면서도 “학술적 논의나 잘잘못은 학계에서 자유롭게 논의해야 하는 영역이고 정부가 외압을 행사하면 학문의 자율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고 했다.

평가원은 국무조정실 소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인사연)에 소속된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 정부에서 독립돼 있다. 중앙 부처가 항의 공문을 보낸 건 기관 입장에서 압박으로 느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해당 백서에 기술된 내용이 PISA 2022 보고서의 핵심 내용과 달라 현장의 오해가 발생하고 있어 해결을 촉구한 것”이라며 “인사조치를 요구하는 등 외압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세종=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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