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책硏 “의사 늘어도 의료비 상승 효과 미미”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21일 16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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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놓고 정부와 의사단체가 갈등을 빚는 가운데 국책연구기관이 “의사가 늘어도 국민 의료비 부담은 크게 늘지 않는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의대 정원 확대가 국민들의 ‘진료비 폭탄’으로 이어질 것이란 의사단체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 “지금도 의사 늘고 있지만 의료비 상승 미미”
21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내부 연구자료에 따르면 보사연은 건강보험 통계 등을 바탕으로 2012~2022년 의료비 증가 요인을 분석했다.

보사연은 이 기간 의료비 증가에 어떤 요인이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성장률 요인 분해법’을 통해 분석했다. 이 기간 활동 의사 수는 연평균 2500여 명씩 늘었는데, 이런 의사 수 증가가 의료비 증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자는 취지였다.

그 결과 해당 기간 건보 적용 의료비는 연평균 7.9% 늘었는데 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2.6%는 수가(건강보험으로 지급하는 의료비의 단가) 인상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두 번째로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2.1%를 차지한 ‘고령화’였다. 약 및 치료 재료의 가격 상승(1.6%), 국민 소득 상승(0.9%) 등의 요인이 뒤를 이었다.

자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나머지 0.7%는 ‘기타’로 분류됐다. ‘기타’ 항목 안에는 △실손보험 확대 △의료기술 발달 △의사 수 증가 등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 의사 수 증가 때문에 발생한 의료비 증가폭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0.7% 미만이라는 것이다. 보사연 관계자는 “비율이 작아 정확한 수치가 도출되지 않지만 의사 수 증가가 의료비 상승에 미친 영향은 0.7% 안에서도 극히 일부로 추정된다”고 했다.

● 의사 수 1위 서울, 1인당 의료비는 하위권
보사연이 분석한 10년 동안 의대 정원은 한해 3058명이 그대로 유지됐지만, 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 수와 국가고시 합격률 등의 요인에 따라 실제 충원되는 의사 수는 매년 달랐다. 이 기간 활동 의사 수 증가 추이를 건강보험 의료비 증가 추이와 비교해 봐도 특별한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보사연의 분석이다.

한해 의사가 4212명 늘어 증가폭이 가장 컸던 2013년엔 건보 의료비 지출 증가율이 6.5%로 평균보다 낮았다. 반면 의료비 증가폭이 10%를 넘었던 2016, 2018, 2019년엔 늘어난 의사 수가 3000명 미만이었다.

또 보사연은 의사 수가 많은 지역이라고 해서 주민 1명 당 의료비 지출이 많아지는 경향이 나타나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경우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가 4.8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하지만 서울 거주자의 1인당 연간 의료비 지출은 213만 원으로 17개 시·도 중 12위였다. 반면 전남은 인구 1000명 당 의사 수가 2.6명으로 최하위권인데도 1인당 진료비는 242만 원으로 전국 2위였다. 보사연 관계자는 “의료비 지출은 의사 수보다 지역 내 고령자 비율 등에 훨씬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말했다.

● 의협 “의대 1000명 증원 시 건보 지출 17조 늘어”
반면 의사단체들은 의사 수가 늘면 의료비 지출이 늘어 국민들이 내야 할 건강보험료 부담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일반 시장에선 공급자가 늘어도 수요 자체는 그대로지만, 의료 분야에선 공급자가 늘면 새로운 수요가 창출된다는 것. 즉 의사가 많아지면 기존엔 하지 않던 ‘불필요한’ 의료 행위가 늘어 의료비 지출이 늘어난다는 논리다.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은 의대 정원을 지금보다 1000명 늘릴 경우 2040년에는 약 17조 원의 건보 의료비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의료비가 이만큼 늘면 국민 1명이 매달 약 3만 원의 건보료를 추가로 내야 한다고도 했다. 의료정책연구원은 또 의대 정원을 2000명, 3000명 늘릴 경우 2040년에는 각각 35조, 52조 원의 의료비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봤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의대 정원을 무리하게 늘렸다간 국민연금보다 건강보험 재정이 먼저 파탄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의대 정원을 중장기적으로 3000명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350명 증원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의사 증원과 의료비 증가 사이에 연관성이 적다는 보사연의 연구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보사연의 연구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의료비만 분석한 결과로, 의사 수 증가에 따라 미용 성형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의료행위가 얼마나 늘어날지는 분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의는 “의사가 늘면 생명과 직결되지 않은 비급여 분야 진료가 급격하게 늘어 국민 부담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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